brunch

누가 나를 사랑하겠어

세상이 너를 속일지라도 마지막 네 편이 있다는 걸 기억해

by 류다



오래전 어느 날 첫째와 이야기하다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말을 들었다.

"누가 나를 사랑하겠어?"

무슨 이유에선지 아이의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니가 어때서? 예쁘기만 한데."

"에이, 엄마니까 그렇지."


그래, 엄마 눈에는 얼굴도 뽀얗고 날씬하고(말랐고) 키는 좀 작지만 귀엽고 착하게 생겼는데, 왜 아이는 자신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객관적으로 봐도 미운 얼굴은 아니다. 진짜 엄마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어디에선가 생채기가 난 아이의 마음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아이는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 혹시 학원 같은 데서 누군가를 짝사랑하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일까? 짝사랑을 많이 한 엄마를 닮은 것일까.


아이는 말이 없고 좀 주눅 들어 보이는 데다 늘 기운이 없다. 고3인데 학원도 다니지 않고 야간자습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학교만 다니는데도 아이는 힘들다고 한다. 인생의 많은 고민을 짊어진 듯 힘이 없고, 예민한 성격 탓인지 아니면 불규칙한 식사 때문인지 배가 잘 아프다. 왕따라도 당하는 것인지 물어보면 은따라고 한다. 담임선생님 말로는 반에서 아이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학생은 없고 친구도 한 명 있다고 하는데, 아이의 학교생활은 전혀 즐겁지 않아 보였다. 자신감이 없고 스스로를 잘 표현하지 않는 것이 사람을 쫓는 이유가 아닐까. 딱 꼬집어 막 싫지는 않은데 별로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은 아이.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첫째가 어째서 사람을 밀어내는 아이가 되어 버렸을까.


상담도 거부하고 부모에게도 속내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아이의 변화. 고민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라도 있으면 걱정이 덜 될 텐데, 아이는 마음의 문을 꼭 닫아걸고 혼자만의 성에 갇혀 사는 것 같다. 그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건 부모가 아닐 것이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다정하게 말 거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언젠가 문을 열고 나올 것이라 믿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큰애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누구나 첫째에 대해서는 기대를 거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 기대를 저버리는 아이의 행동이 싫고 마음에 차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무런 의욕이 없고 공부가 아니라도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게으르게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아이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엄마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이제 성인이 되려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도 자신이 감당할 몫이다. 말로만 '경계존중교육'을 이야기하지 말고 나부터 자녀와의 경계를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성년자라고 해서 엄마 마음대로 휘두르고 무시하면 안 될 것이다. 이성은 그렇게 말하지만, 나도 속 좁은 인간인지라 복장이 터진다. 마음을 좀 더 비워야겠다.


하지만 세상사람이 비웃고 등을 돌릴지라도 마지막 네 편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언제 찾아오든 따뜻한 밥을 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keyword
이전 06화고양이 입양을 포기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