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 갤러리

두 번째 봄

by 새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2학년 2학기가 다가왔다. 후회만 가득했던 2학년 1학기를 만회하기 위해 방학 동안 많은 졸업 작품을 보러 다니고, 스스로에게 시시포스의 형벌을 내려 매일 답사도 다녔다. 아마 거의 모든 학교의 졸업 전시를 보러 다녔고 서울의 구석구석 또한 탐방했을 것이다. 물론 방학 때 미술관 설계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지는 않았다.


담당인 교수님께서는 1년 전의 교육과정과는 다르게 작가 한 명을 정하고 그 작가를 위한 미술관을 만들라고 하셨다. 대지는 삼청동 주변이었다. 청와대 춘추관 옆 고즈넉한 분위기로 물들어 있는 곳이었다. 첫 수업시간에 답사를 갔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날씨가 매우 좋아 대지를 답사하고 나서 주변의 여러 갤러리들을 돌아다니며 교수님께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에 하나인 ‘애프터눈 갤러리’를 찍은 사진이 이 날의 기록이기도 하다.



경사진 곳을 다루는 건 처음이라 사실은 해당 대지를 5번도 넘게 가 봤다. 한 번 가본 것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업을 끝나고도, 그리고 주말에도 여러 번 갔다. 지금 간다면 무슨 느낌으로 그 곳을 볼지 궁금하다. 우선 대지의 가장 큰 특징은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낯은 곳이 약 3m차이였지만 경사도가 20%로 어마어마한 기울기를 자랑하는 땅이었다는 것이다. 단지 미술관만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를 어떻게 풀어내는지, 그리고 이걸 컨셉과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작품에 연결하는지가 중요해 보였다. 또한 대지를 둘러싸고 최소 2m부터 최대 5m 까지의 옹벽들이 있어 주변 땅과의 교류가 쉽지 않았다. 주변 건물은 대부분이 주택이라 오히려 미술관이 들어서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특히 작은 주거들 (서울에서 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아파트와 빌라) 이 거의 없고 단독주택들이 모여 마치 도시형 한옥과 비슷한 스케일로 마을을 형성하는 커뮤니티의 특성이 있었다. 상가가 형성되기 어려운 지역이다 보니 옛날 문구점, 아담한 카페들, 갤러리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주택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을 설계하는 데에 있어서 물리적/심리적인 스케일감 또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과 어우러지려면 비슷한 스케일의 건물을 짓고, 주변과는 다르게 튀는 건물이 컨셉이라면 스케일감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그 다음 관문은 작가 선정이다. 교수님께서 배부해주신 작가 리스트 파일을 보며 작가분들의 그림을 모두 봤다. 그 중에 마치 첫 눈에 이끌렸던 작품이 있으니, 바로 서세옥 작가의 ‘ 한 사람들 ‘ 이었다. 조사해보니 서세옥 작가는 우리나라의 수묵추상의 거장이며, 점과 파격적인 수묵을 이용한 추상화로 한국 현대 미술계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몇 개의 단순한 선만으로도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동시에 여백의 미를 담는 느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가 그린 사람들은 개별적이고 특수하다기 보다는 추상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면, 이 분의 그림들을 담은 공간은 3D라고 할 수 있는 공간 속에 Dimension (차원)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갈 수 있다면 어떨까?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작품들의 모든 것을 포괄할 단어로 (주요 컨셉이다) ‘에워쌈’을 꼽았다. 주변의 산들도 마치 대지를 에워싸는 느낌이었고서세옥 작가가 남긴 말인 ‘산을 지키는 것이 예술이며, 산은 예술을 담는다’ 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물을 짓는 데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미술관을 설계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핵심 공간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러한 핵심 공간이 담고 있는 특성을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본 갤러리는 주변의 산의 흐름을 선으로 치환하고, 선을 담는 면이라는 개념이 갤러리 핵심 공간의 컨셉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면을 에워싼다면 하나의 중정 개념을 도출해낼 수 있겠다.

하지만 본 건물의 대지는 경사가 엄청나다. 중정이 핵심 공간 중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중간에 있는 옹벽을 허물었다.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루트 또한 생각해야 할 관문 중에 하나기 때문에 미술관에 도보로 방문하는 관람객들, 차량을 이용하는 관람객들, 물품을 하역하는 차량들의 동선을 모두 분리해야 한다. 외부 차량이 지하 주차장을 통해 들어오고(지상에 차량이 들어오면 관람객을 위한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도보로 방문하는 관람객은 이와 동선을 분리한 1층에 접근로를 두었다. 하역은 전시실이 위치한 곳과 가까우며 운반하기 용이한 1층 뒷편에 두어 레벨을 맟추었다.



중정은 1층에서 외부로 완전히 열려 있다. 날이 좋다면 이 곳에서 자그마한 전시를 하거나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중정이 빛이 100프로 들어온다면, 미술실에는 다양한 양의 빛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층의 카페 및 공용공간에는 전망을 볼 수 있도록 창이 열려 있다. 바로 옆의 제 1전시실에서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본 공간에 대한 경험이 시작된다. 제 1전시실은 일부 아래 부분에 빛이 들어오며, 야외 전시와 연결된다. 층고도 상대적으로 높아 다른 전시실에 비해 열려 있는 공간이다. 반면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제 2전시실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2전시실을 나오면 자연스레 계단이나 엘레베이터로 2층까지 올라가기 위해 중정을 한 바퀴 도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 텀 쉬어갈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제 3전시실과 관장실, 연구실 등이 있다. 제 3전시실의 윗편으로 빛이 들어와 스카이라이트를 일부 느낄 수 있다. 또한 코어 옆에는 야외 공간이 있는데, 추후에 가든이나 야외 행사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 지하에 있는 소강당 또한 다른 전시를 할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번에는 1학기와 같은 실수 (스터디 모형을 모두 버린 것) 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진을 미리 찍었다. 처음에는 놀랍게도 전체 매스조차 곡선이 아니었다. 곡선을 일부 넣고도 루프의 조정은 계속되었다. 지붕이 평평하기도, 이어져 있지 않기도 하였지만 디벨롭 과정을 거쳐 비정형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모양이 되었다. 무사히 최종 마감을 마치고, 사진과에 재학 중인 친한 친구가 모형 사진을 찍어줘서 의도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드러났다. 모델 사진 덕분에 갤러리 설계는 저학년 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름은 덕분에 자연스럼게 컨셉이 드러난 TO-GATHER Gallery 라고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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