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스승의 날

by 초코은

스승의 날에

언제부터 교실 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하게 됐을까.


스승: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스승의 날: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되새기고 그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정한 날


해가 갈수록 스승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 아니 오히려 말이 학생들에게 먹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져서 자괴감이 드는데, 저 우주 너머의 스타워즈 요다만큼 먼 거리에 있는 그 울림의 단어가 하루 종일 칠판에, 복도에, 운동장에 유령처럼 떠다니는 스승의 날


문을 열면


터지는 폭죽

(은혜라는 딘어에 안 어울리는 소도구)


교실은 어두컴컴하고


(영원이 불이 안 켜졌으면)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학생들은 잘못이 없어. 이 날 초라하게 보내면 샘이 실망할까봐 저렇게 현실배반적인 가사도 쑥스러워하지 않고 입을 쫙쫙 열어 노래를 부르는데)


5년 동안 딱 한 번

교실 문을 열었는데


폭죽도 없고 환한 교실, 평소와 다름없는 교실


박선생은 안도하면서도 벽을 타고 번져 오는 옆반 스승의 은혜는~ 노래 소리에 아이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잘못한 게 없어)

(나는 너희들의 스승이 아니야. 그저 조금 더 일찍 살아서 길 안내를 하는 내비게이터 같은 사람일 뿐. 거기다 급식식단표보다 더 의미 없는 교과서 속에 지식을 전하는 사람일 뿐)


그때 볼이 빨개진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원했던 풍경이 생각보다 쓸쓸했기 때문일까.

(왜 스승의 날에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걸까. 그냥 하루 쉬게 해 주면 안 될까.)


갑자기 순간 이동한 것처럼 교실이 환해지고 얼굴 앞에 확대되는 케이크 글자 "축 스승의 날 감사합니다"

촛불을 불라는 박수 소리에 합죽이처럼 입을 오므리고 촛불을 불자

"와~"하는 박수소리에 이어


"오늘 놀아요!"

"그 케이크 비싼 거예요"


"그래, 샘이 잘라서 이따 나눠 줄게 함께 먹자"


"김영란법에 걸릴까 봐요?"

"야. 선생님한테 그게 무슨 말이니?"


"자 1교시 준비하고 들어오시는 선생님들한테 예의 있게 하고"

(드디어 종이 친다)


초를 너무 많이 꽃아서 벌써 케이크 크림이 녹으려 한다. 재빨리 초를 뽑고 계란과 버터의 비율이 맞지 않아 퍽퍽한 스펀지케이크를 플라스틱 칼로 여기저기 자르다 보니 "축", " 스스" , "의 나" " 가" "ㅁ" "사" "합"" ㄴ" "다"가 해체된 케이크 조각들이 지저분하게 흩어진다. 이 조각들을 공평하게 나눠 교실에 가져가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공정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교육학을 배울 때 교사를 바라보는 관점 1. 성직자 2. 교육자 3. 노동자 교수님은 1번에 별표를 하라고 했는데

이제 박선생은 교육자와 노동자와 성직자 모두 직업을 나누는 카테고리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일전에 만족도가 제일 높은 직업군으로 성직자가 뽑힌 신문기사를 보고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 오늘은 더욱 스승이라는 직업에 걸맞은 표정과 행동을 하는 거야. 감격하기도 하고 브이자도 그리면서 포즈도 취하고"



오늘 하루 종일 교실마다 칠판에 그려진 스승의 날 축하 메시지와 그림으로 칠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귀여운 시도가 거셌다. 고깔모자를 씌워 놓고 웃는 반도 있었다.


띠링

퇴근할 무렵 첫해 가르쳤던 00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메시지를 한참 읽고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은 채 가방을 든다.

스승이면 어떻고 선생이면 어떻고 노동자면 어떠랴.

교실 속 소란한 소음을 뚫고 굽이굽이 도착한 메시지가 오늘이 스승의 날임을 깜빡깜빡 알리고 있다.






이전 02화4월: 벚꽃 필 때 울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