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우회하자. 중요한 일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수요일 4월 2일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하면, 미국이 ‘부당한’ 관세로부터 ‘해방되는 날(liberating day)’이다. 그는 대선 기간 중 전 세계의 모든 국가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보편 관세’보다는 국가별, 품목별 관세로 정책 방향을 바꾼 듯하다. 대통령 취임 후 현재까지 이루어진 그의 관세정책들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첫째, 국가별 관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3월 4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의 모든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펜타닐 유입 등을 이유로 2월 4일과 3월 4일에 각각 10%씩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EU에도 불공정 무역을 이유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자국 산업의 보호를 명분으로 부과하는 품목별 관세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5%의 관세는 3월 12일부터 적용되었고, 농산물과 자동차에 대한 25%의 관세는 4월 2일부터 적용된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해서는 25%의 관세가 결정되었지만, 부과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셋째, “무역 상대방과 대등한 수준으로 부과”하겠다는 ‘상호관세’다. 상호관세는 개념적으로는 쉽지만, 실무적으로는 매우 어렵다. 국제 무역은 상호보완적이고 분업적이므로 국가별로 수출 품목과 수입 품목은 각각 다르기 마련인데, 상호관세가 동일 물품에 동일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상대국 간의 평균 관세를 통일하겠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미 부과되었거나 부과 예정인 국가별, 품목별 관세와의 중복 문제는 어떻게 정리될 지도 불확실하다. 한국은 평균 관세율이 높고 미국에 대한 큰 폭의 무역수지 흑자국이지만, 한-미 FTA로 인해 한국과 미국 사이의 관세율 격차는 거의 없다. 이런―무역수지 적자지만 양국 간 관세 격차는 거의 없는―경우에는 어떤 “대등한 수준”의 상호관세가 적용될지, 적용한다면 어느 국제법 조항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할지 역시 불분명하다.
내친김에 트럼프가 집권 초부터 강하게 관세정책을 밀어붙이는 이유도 정리해 보자. 첫째, 편리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관세인상을 포함해 정부 부처 축소, 이민 제한, 탈탄소 정책 중단, 감세 정책 등 다양한 정책을 공약했다. 이들 정책 대부분은 내부용이다. 실천에 옮기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거나, 수행 과정에서 각종 소송이 발생해 사법부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외적인 관세정책은 국내 정치적인 마찰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둘째, 협상 카드다. 상호관세를 비롯한 복잡한 관세정책들을 활용하면, 방위비 분담이라든지 영토, 이민 분쟁 등과 같은 협상에 있어서 상대방 국가들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 트럼프는 논란이 되는 정책을 무수히 양산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공격을 분산시키는 소위 ‘정보의 홍수’(Flood the Zone)' 전략을 잘 구사하는데, 처음에는 강력히 반발하던 나라들도 논점을 흐리며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트럼프와 결국 타협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잘 관철한다.
셋째, 미국으로의 기업 유치다. 트럼프를 비롯한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관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관세가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라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이 낙후되어 있고 그로 인한 고용 불안이 정치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관세 부과는 장기적으로 해외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 또는 해외로 진출했던 미국 기업의 유턴을 유도한다. 단기적으로는 관세로 벌어들인 수입(收入)을 감세 정책이나, 고용 관련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아마도 4월 2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상호관세 조치가 발표되면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야기될 것이다. 고율의 관세는 미국 자신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관세는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고, 소비와 투자 등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출이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뒤죽박죽 논란투성이의 상호관세를 밀어붙이는 것은 중국이라는 궁극적인 타깃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상호관세라는 지렛대를 적극 활용하고 싶어 한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