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5
51.
거울 안에 한 사내가 있다. 사내의 얼굴은 그의 시선 아래서 와해된다. 무너져 내린다. 옅은 갈색의 음영을 지닌 홍채와 동공이 분리되고 검은 솜털이 떨어져 내린다. 좌반구로 이어진 곳이 흐려진다. 눈썹 털은 희게 쉬고 사람, 살갗은 점점 가물어지고서 못내 해면체처럼 벌어졌다. 그는 여태까지 눈꺼풀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눈 깜빡임 하나로 그 모든 사건들이 상쇄될 것은 분명하다. 뺨의 게슈탈트(gestalt)와 눈두덩의 게슈탈트 그리고 얽어진 뇌의 게슈탈트가 뒤엉킨다. 그는 그 작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곧 그의 늙수레한 얼굴이 분명해진다. 그는 또렷하게 나이를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습관적으로 눈을 감고 뜨고야 말았다. 그 모든 잔상이 흩어졌다. 그는 아직 서른을 맞이하기 이전이다. 싱그러운 봄을 지나 삶의 초여름에 가닿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환상이다. 나비의 꿈이다. 하지만 그것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가 시작되고 문득 그는 걸음을 걷다가 불투명한 쇼윈도나 차량의 차창으로 구부정하게 걷는 한 샌님을 목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내는 그것을 자신이라 여기지 못했을 수 있다. 가령 아무렇게나 삐죽하게 선 직모의 머리칼―그는 이전에 삭발을 했었다― 때문에 그는 밤처럼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걸음은 성큼하지만 팔을 휘적거리진 않는다. 그는 신발 앞코나 그 약간 너머를 보며 걷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적으며 가령 알더라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그는 멍청하게 웃곤 한다. 어울리지 않게 웃는다. 그러한 웃음은 노년이나 아이에게나 적당하다. 주변을 살피곤 새들을 보거나 아름다운 길섶을 보고서 웃는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쉽게 놓쳐 지는 사물들이다. 애써 주목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의 시선은 비웃음을 사기 쉽다. 바람 부는 날의 강변 제비들의 춤이나, 물오리들이 수면으로 고개를 박는 장면, 그리고 교량 아래의 비둘기, 추운 날씨 덕에 살진 참새나 흰 해오라기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의 눈은 점점 새들처럼 단순해지고 깊숙한 곳으로 시선을 던진다. 초점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사내는 사람을 볼 때에 눈이 아닌 콧잔등과 미간 사이를 본다. 그럴 때면 비둘기 같은 인상을 준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홀로 걸었다. 한 쌍의 날개도 없이, 겹칠 일 없는 두 다리를 열심히 놀렸다.
52.
무엇인가 잉크 얼룩을 끄르면서 열심히 무엇인가 썼다. 얼룩은 발음되고서야 의미를 갖지만 얼룩을 구태여 발음해서 읽는 사람은 적다. 얼룩들은 희끗하고 진동하는 것들을 그려놓는다. 그것이 한 개인에게 울림으로 가닿을 지는 미지이다. 그 안에서 그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