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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by 아라 Feb 25. 2025

섬 안에 식당이 많지 않아서 사람이 몰리기 전에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전 11시, 식당이 열자마자 주문을 했다. 햇빛은 따듯하고 바람은 선선한 완벽한 날씨.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샐러드가 함께 나왔다. 크림파스타도 곧바로 나왔다. 스테이크부터 썰어 한입 맛봤다. 맛있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다음은 크림파스타 차례. 먼저 파스타를 먹은 오빠에게 맛있는지 물으니 애매한 표정만 짓는다.


‘크림파스타도 실패할 수 있나? 보기엔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맛이 궁금해 나도 따라서 한입 먹었다. 오빠의 반응이 바로 이해됐다. 파스타에서 아무 맛도 안 났다. 무맛.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셀프코너에 있던 후추와 소금을 뿌렸다. 아주 살짝 나아졌다. 이럴 수가. 크림파스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그동안 먹은 파스타는 소금이 얼마나 들어간 거야? 이건 크림파스타가 아니라 크림향 파스타야.


그나마 위에 뿌려진 치즈와 함께 먹으면 좀 났다. 호주 사람들은 이런 맛에 익숙한 걸까? 내가 훨씬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만든 파스타는 호주 사람들이 짜다고 느끼려나. 먹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재밌다. 이런 상황마저도 즐거운 것이 여행이다. 예상과 빗나간 순간,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즐기는 것이 여행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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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맛이 없지만(무맛을 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멋진 곳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 나에게 음식의 맛과 행복은 크게 상관이 없다. 행복에 음식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눈앞의 풍경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너무 행복해서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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