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으로 시작한 편식이 점차 범위를 넓히며 육고기에까지 이른 건 고등학교 무렵이었다. 당시만 해도 급식이 아닌 도시락을 싸던 때라 내가 육고기를 먹는 지, 안 먹는지 다들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개인 취향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대학시절이었다.
인기 메뉴는 그때나 지금이나 삼겹살이었고, 굳이 ‘나는 안 좋아하는데 쩜쩜쩜’으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그냥 “오예!”를 부르며 따라갔다. 생마늘, 고추, 양파 그리고 된장찌개만 먹어도 충분한데, 파워E라 모임에서 눈에 띄는 편이었고, 당연히 남다른 편식도 금방 드러났다.
- 야, 너 왜 안 먹어?
- 채식주의자야?
채식주의자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이니 참으로 민망했다. ‘채식주의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이란! 나는 정말 그런 아닌데.
- 아니, 채식주의자까진 아니고. 그냥 안 먹어.
- 왜? 맛있는데? 먹어봐.
- 괜찮아. 다른 거 맛있는 거 많아.
- 살 빼려고 그래?
갑자기, 살??? 이 와중에 기승전‘살’로 끝나는 대화가 참 싫었다. 다행히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완전한 육식주의자인 첫사랑, 첫 남자친구를 만나며 나는 그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맛있게 먹는 척 먹기 시작했고, 맛있는 척 하다 보니 그 꼬소한 맛을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랑에 눈이 멀어 삼겹살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술 한 잔 걸치는 날, 바싹 하게 구워진 삼겹살은 마늘, 고추, 쌈장을 넣어 깻잎이 올린 상추 위에 척 올려 싸먹음, 그 맛은 다 아는 맛이라 기절할 맛이었다. 식탐이 많은 나는 전국민이 아는 그 맛을 금방 알아버렸고, 사랑이 깊어지는 만큼 콜레스테롤 수치도 함께 쭉쭉 올라갔다. 급기야 쌈도 패스한 채 지글거리는 기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삼겹살을 연신 기름장에 찍어먹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이렇게 육식주의자가 되는 줄 알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있었다. 곱창, 대창, 천엽 같은 장기 음식 말이다. 도대체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곱창, 대창… 어차피 동물의 장이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은 열광할까?
‘맛집’이라며 티비에 나온 식당에서 막창, 곱창을 세척하는 과정을 보고는 더 경악했다. 허옇고 흐물흐물하고 아주 기다란 그것을 손으로 쫙쫙 훑어서 빨래하듯이 씻는데,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긴 거야, 경악스럽지만 당연하잖아. 그건 초식동물 소, 돼지, 양의 소화기관인 장이니까! 그래, 이건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소, 돼지, 양의 장기기관인 거다. 곱창과 대창, 그러니까 동물의 소장과 대장,
‘고소하다’고 말하는 곱도 사실 소장 안에 있던 부산물이다. 소, 돼지, 양의 소장도 사람의 소장처럼 음식물의 소화 및 흡수가 일어나는 곳으로 곱은 소화효소액과 흡수된 영양분, 수분이 뒤섞인 액체다. 열을 가하면서 약간의 고체화가 이뤄진 것이다. 곱창을 좋아하는 이들 말로는, 씹을수록 나오는 소장 부산물들의 그 고소함과 쫄깃한 식감에 빠져들면 떠올리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헤어나올 수 없다 한다.
사실 곱창은 동의보감에서 건강에 유익하다고 나와 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검증된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대장인 대창은 조금 더 경악스럽다. 대장. 알지 않나? 대장에는 어떤 역할을 하고, 뭐가 들어있는지? 대창의 곱은 그냥 지방덩어리다. 사람과 같은 포유류의 장기를 먹으면서 굳이 이런 영양학적인 얘길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 같긴 하지만 여하튼 건강에도 유익하지 못하다.
막창은 대장 중에서도 끝부분, 직장. 그러니까 항문 근처에 있는 부위다.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이제 고소한 곱창, 대창, 막창에 소주가 땡길 때마다 생각해보면 좋겠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곱창이나 대창의 정체는 무엇이고, 과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공장식 축산업에서 길러진 동물들은 비위생적이고 협소한 환경에서 자라며,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성장 촉진제와 항생제에 의존해 키워진다. 동물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이 나빠지기 일쑤다. 이렇게 자란 소나 돼지의 장기를 먹는 것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다.
실제로 공장식 축산업은 고기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비윤리적이고 비위생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동물들이 그 안에서 겪는 고통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축적되는 유해 물질이 사람의 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항생제 남용이나 성장 촉진제는 인간의 건강에도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도축된 동물의 장기를 씻어 깨끗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건강에 안전한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여전히 곱창을 고소하게 먹고 싶다면, 우리가 그들의 배를 갈라서 해체한 장기를 먹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물론, 나도 삼겹살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동물의 장기를 기꺼이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맛’만으로 오늘 메뉴를 정하고 싶은지 다시 묻고 싶다.
- 곱창 먹자.
- 남의 장기는 안 먹어.
- 삼겹살은 먹잖아.
- 살은 일부러 삭제하려고 다이어트도 하잖아.
- 야, 그냥 그것도 먹지 마.
- 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