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래도 못 먹겠어?
친구 어머니가 생선 대가리에 상추를 올려놓는다.
- 네, 이미 눈 마주쳤어요.
- 아유, 참 별난 인간이 들어왔다.
처음 생선을 먹지 않는다는 말에 ‘왜’를 물으셨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서 배를 파헤치기 좀 그래요.”라는 대답을 내놓았고, 별 희한한 애가 다 있구나라는 눈빛으로 보셨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해결이 가능하지 않겠냐 싶어 잠시 뒤, 생선 (내 기준에) 얼굴에 상추를 덮으신 거다. 애쓰시는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끝내 먹을 수 없었다.
안지 얼마 안 되는 지인들은 나의 소신에 의문을 제시하며 붕괴를 꾀한다.
- 대가리 날리고 토막 내서 나온 건? 참치나 이런 거!
나는 십여 년을 이런 입맛으로 살아왔다. 싸울 생각은 없다. 그냥 물어보니 답하는 거다.
- 봤잖아. 걔네 어떻게 생겼는지. 사이즈 크다고 생선 아니냐?
내가 독특하다는 걸 인정하고 살기 때문에 더더욱 타인의 평범한 입맛을 존중한다.
- 오늘 회식은 회 어때?
- 천 대리, 회 안 먹잖아.
- 아! 저 회는 안 먹는데, 횟집은 좋아해요! 스키다시 맛있잖아요! 그것만 먹어도 배불러요.
내 인생에 뭐라고 하지 않는다면, 나도 이와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지향한다. 그런데 왜 이 글을 썼냐고, 물으신다면 다이어트를 원하는 당신을 위해 입맛을 떨어뜨릴 갖가지 논리를 찾는 중입니다. 채식을 권하는 책은 아닙니다, 라고 정중하게 다시 설명해 드리고 다시 말을 이어가겠다.
나의 편식은 주로 눈코입 유무로 나뉘는데, 바다에서도 많은 눈코입이 있는 생명이 살고 있다. 포유류인 소, 돼지, 양은 사람과 같은 분류이며, 귀여운 데 어떻게 먹어, 라는 식의 논리(?)가 붙는 반면, 생선들은 생긴 것도 (미안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
환 공포증이 있는 내게 반복적인 비늘 패턴도 스트레스고. 그들은 하나 같이 눈도 너무 동그랗게 뜨고 있고, 코는 구멍만 뚫린 게 해리포터를 못 죽여 안달 난 볼드모트 같다. 입은 또 왜 벌린 채 죽어서 혀도 나와 있는지. 안쓰럽지만 비호감이다. 그나마 이들은 인간의 인류애, 박애주의가 그나마 베풀어지는 이들에게 잡히는 선택받은 종족에 속한다.
바다의 포식자, 상어류로 가면 인간의 무자비 그 자체다.
삭스핀은 상어의 지느러미로 만든 중식 고급요리다. 삭스핀을 ‘바다의 정수’라며 선호하는 이들은 씹을 때의 그 쫄깃함과 부드러움,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감각이 일품이고, 함께 들어간 해산물이 감칠맛이 은은해 다른 요리와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바다의 포식자 ‘상어’를 한 입만 먹고 버린다는 우월감이 그들의 입맛을 다시는 건 아닐까? 모두는 아니지만 그런 이들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 설사 그렇다한들 삭스핀이 식재료로 주방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굳이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맛인지 묻고 싶다.
삭스핀의 속사정은 악랄함 그 자체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지느러미로 헤엄친다. 상어 지느러미 사냥꾼은 먼 바다로 나가 펄펄 뛰는 건강한 상어를 잡아 지느러미가 예리한 칼로 자르고, 바다에 던진다. 몸통은 맛이 없기 때문이라는 접입가경의 이유가 여기 붙는다.
지느러미가 없는 상어는 어떻게 될까? 지느러미가 없는 채로 쓸쓸히 헤엄치며 살다 죽는다? 짝짓기를 못한다? 왕따를 당한다? 아무 지장 없다? 지느러미는 다시 자란다? 모두 땡! 땡땡땡!
던져진 상어는 바다에 그대로 가라앉아 죽음을 맞이한다. 앞서 설명했듯 부레가 없어 지느러미가 없는 상어는 헤엄을 칠 수 없어 이동도 할 수 없고, 먹이는 구해 먹을 수도 없다. 인간이 칼로 지느러미를 도려낸 후, 휙 바다에 던지면 그대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 죽는다. 인간의 탐욕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일단 굳이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에 바다 아주 깊은 곳에 사는 상어의 지느러미까지 먹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건강상의 유익함을 이야기한다면, 그것보다 저렴한 가격대에 훨씬 구하기 쉬운 식재료 중에서도 그 영양분 섭취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요즘 영양제는 없는 종류가 없고 아주 위생적인 환경에서 잘 배합되어 멸균 포장돼 나온다.
그래도 삭스핀은 맛있다면, 할 말은 없다. 먹어야지, 뭐. 고작 당신의 위를 살짝 스치기 위해 커다란 상어가 지느러미가 잘린 채 가라앉아 죽는데도 먹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상어의 명복을 빌며 잘 드시고, 바다 생태계를 위한 기부금이나 좀 많이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