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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7. 2024

# 5. 튤립 닭발이라고요?

요리가 예술이고, 동물의 복지와 생명권이 동시에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혼란은 종교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하다. 더욱이 대놓고 이 음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상황에서는.  


온가족이 즐겨보는 저녁 6시 반 TV 프로그램 <생생 정보통>에는 가끔 당황스러운 식재료 손질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어젠 동공이 유난히 맑은 갈치 머리만 댕강 댕강 와글와글 육수가 나왔는데 며칠 전엔 소머리국밥에 이분도체된, 그러니까 정확히 반으로 쫙 쪼개진 소의 두개골이 레고 피규어처럼 잔뜩 들어간 어마어마한 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개를 돌렸지만 뇌는 순식간에 소의 머릿수를 세고 있었다. 아이도 눈을 가리며 “아, 모자이크 처리라도 해주지”라고 안타까워했다. 철저히 소를 타자화한 어느 식욕 좋은 제작진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장면이 한 아이의 편식에 한몫하는 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다. 나는 생명을 존엄함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는 편식 없이 잘 먹었으면 하는 모순덩어리, 이기적인 엄마다.)     


소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릴게 하나도 없다더니, 머리를 저렇게 그대로 삶는 구나 그날 처음 알았다. 남편은 ‘그럼 어떻게 삶을 거라 생각했어?’라고 물었다. 그래, 나부터도 조리의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음식으로 보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맑디맑은 소의 눈망울은 어디갔을까 생각해보면 괜히 슬퍼진다. 그래서 동물을 잡을 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이 왠지 비겁하다고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고사장면은 늘 불편했다. 돼지머리를 통으로 올려놓고 그 입에 지폐를 물리는 성스러운 과정을 보기 힘들다. <돼지를 키우는 채식주의자>에는 돼지머리를 준비해야 하는 이동호 작가에게 이장님께서 “예쁘게 삶을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쁘게란 웃는 표정으로, 라고 설명돼 있다. 아, 죽임을 당하서 목까지 잘렸는데, 삶겨서 식탁 위에 올랐을 때 웃기까지 해야 다니, 돼지의 가혹한 인생에 가슴이 답답했다.       


‘동물’이 식재료가 되고 음식이 되기까지, 소비자는 불편한 장면과 과정을 겪지 않고 잘 플레이팅 된 한 그릇의 ‘음식’만 보고 감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이름조차 한자어, 영어로 바꿔 음식다운 명칭을 갖게 된다. 소국물은 사골로, 개고기는 보양식으로, 돼지머리는 편육으로, 사실 동물도 가축이란 이름, 축산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생명보단 식재료로 머릿속 합리화가 진행된 건 아닐까. 대부분 소비자가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배려한 탓이다. 생명을 취하는 행위에 이런 식의 합리화가 과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모든 음식이 교묘하게 이름을 바꿔 유혹하는 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매니아가 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앞서 얘기한 소머리국밥과 닭발. 닭발은 지방이 적고 콜라겐이 많다는 이유, 매운 음식이라 열을 발산시키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고, 감칠맛이 나기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소주와 찰떡궁합이란 이유로 (화려한 음식이라 소개가 길었다.) 사랑받는 안주거리다.   

    

아주 새초롬하게 예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입이 짧은 편이었는데 매콤한 것 유독 닭밝을 좋아했다. 밤중에 놀러간 나를 위해 닭발에 소주를 상에 내놓았다. 나는 타인의 밥상과 식습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타인의 삶은 타인이 생각하고 선택할 몫이다.


나는 그저 “저게 도대체 몇 마리의 발이야?”라고 닭의 잘린 발이 수북하게 쌓인 접시에 시선을 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용의주도하게 비닐장갑까지 장착하며 이미 강렬한 도파민(식욕 호르몬, 침과 관련된 호르몬? 반응세포, 뇌의 부위)을 분출하고 있었다. 한손에 닭의 발을 들고, 입은 이미 오물오물, 아니다. 오독오독 소릴 내며 발골하던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닭도 빠짐없이 희생되는 동물 중 하나다. 닭발, 모래집(똥집), 내장, 모가지 등도 모두 식재료로 활용되니.      


얼마 전엔 고된 일과 후 한 잔하는 유명 인플루언서가 닭발에 소주를 한잔 하는 사진도 봤다. 나는 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튤립 닭발이란 해시태그에 나는 그의 손에 들린 닭발을 용감하게 관찰했다. 어디가 튤립 같은 거지? 빨개서? 아님 그냥 삼지창 같은 모양? 더 분석하기엔 잘린 닭의 몸통이 떠올라 괴로워서 관뒀지만, 튤립 닭발이란 애칭은 너무 강렬해 밤새 맴돌았다.      


이튿날, 글을 쓰기 위해 튤립닭발을 찾아보니 일반 닭발과는 다르다. 이름만 예쁘게 붙인 닭발의 별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튤립닭발은 닭발의 발가락부분 뼈를 발골하여 없에고 기둥뼈만 남겨서 먹을 때 기둥뼈를 잡고 먹기 쉽게 만든 닭의 발이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최근에는 특허 받은 기계가 있다고도 한다.) 발가락 부분에 뼈가 없는 모습이 튤립처럼 보인다고 한다.


취기에 세상에 아름다워 보인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내 눈에는 그냥 댕강 잘린 닭의 발처럼 보인다.      


동물의 신체부위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기술은 날로 발전, 진화하고 있다. 재료를 손질하는 방법, 조리하는 방법은 관련 산업에서 연구하고 있지만, 부르는 명칭은 소비자가 애정을 담아 별명처럼 붙여준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부르는 이름이 꽃 같으니 얼마나 군침 돌까, 사랑을 받을까 싶다. 달리 부르고, 예쁘게 부른다고      


최근에는 돼지 코 요리가 있단 사실도 알게 됐다. 전기코드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 말고. 진짜 꿀꿀 돼지 코를 말하는 거다. 반들반들 하고 동그란 모양에 구멍이 퐁퐁 두 개난 돼지 코는 정말 사랑스러워 평소 돼지 코 이모티콘도 좋아하는 내게 너무 잔인한 요리다. 돼지 코만 싹뚝싹뚝 잘라 나열된, 플레이팅 사진을 보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내가 본 것 중 하나는 4행 5열로 압축팩에 들어간 돼지코였다.      


엽기적인 요리 중 하나로 중국 돼지코요리(猪鼻子料理)를 소개하는 글도 봤는데, 성석제의 산문집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한겨레출판. 2015)에는 서울 토박이들만 먹는 비밀 메뉴라며 돼지 코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아쉽게도 돼지에게 코는 하나뿐이고 그 코에서 나오는 고기의 양도 매우 적다. 처음 돼지 코 수육, 정확하게는 ‘돼지 코 수육 슬라이스’라는 음식에 대해 들었을 때는 ‘콜럼버스의 달걀 프라이 서니 사이드 업’처럼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처음 돼지 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p.53)    

 

콜라겐이 많다는, 돼지 코. 돼지 코. 나는 그냥 할 말이 없다. 굳이 누가 봐도 돼지 코인데, 돼지 코를 입에 넣어 앙 베어 먹고 싶은지. 개인의 취향이니 일단 나는 한숨 한번 폭 쉬고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시간이 되시거나 돼지고기 특수부위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씩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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