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고기를 좋아한다. 생선은 더 좋아한다. 어린것이 유아용 식탁의자에 앉아 외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조기살을 냠냠 먹던 모습이 귀엽지만 낯설었다.
유난스런 엄마와 다른 식성을 가진 아이의 모습은 이상하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됐고, 그래서 가끔 닮은 모습을 발견하면 걱정스러웠다. 아이는 크게 태어났지만 작게 성장하는 중이다. 또래보다 한참 작은 아이가 밥을 먹을 때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성장이 끝날 때까진 무엇이든 잘 먹었으면 좋겠다 싶다.
하지만 아이는 나조차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식재료에서조차 생명을 가늠한다.
- 알밥? 설마 그 알이 그 알이야?
- 응, 생선알.
- 그러니까. 엄마 그 알이 물고기의 새끼?
- ...응, 그.... 그렇지? 맞아. 그 알.
‘아, 얘가 또 먹는 게 몇 개 없는 데 이제 알밥도 안 먹겠네’ 싶은 마음에 “괜찮아, 물고기 알은 엄청 많으니까. 저거 봐. 저렇게 작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잖아.”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아이는 생명에 대한 엄마의 비겁한 변명을 물고, 놓치지 않는다.
- 그러니까. 저렇게 많은 물고기의 아이를 한 입에 넣어 씹는다고?
- ......
말줄임표에 답을 얻은 아이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합장한다.
- 삼가 물고기 아기의 명복을 빕니다.
알밥(알밥)에 사용되는 알은 주로 날치알(토비코)이지만 연어알(이쿠라), 대구알(멘타이코)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입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 밝고 투명한 오렌지 색깔의 알은 음식을 더욱 먹음직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알은 생산(양식), 채취 등 최소 어느 한 가지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고가의 캐비어는 철갑상어에서 채취하는데 뉴스데스크는 2001년 채 자라지도 않은 철갑상어까지 닥치는 대로 통조림 캐비어 공장으로 보내는 장면을 보도했다. 카자흐스탄 장관은 “밀렵이 엄청나다”며 씨가 마를 지경인 남획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무분별한 성게알 채취도 해양 생물 다양성을 훼손한다.
알, 알 중에 가장 불쌍한 알은 뭐니 뭐니 해도 닭알, 달걀이다.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묘사된 것처럼, 고속도로에서 드물지 않게 마주치는 닭장과 닭 운반차량은 닭의 사육환경을 예상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예상대로다. 다닥다닥 붙은 녹슨 닭장 안에서 닭은 평생 날개 한번 제대로 피기 힘들다. 주인공 닭 ‘잎싹’이 목숨 걸고 탈출할 만했다. 아무리 날지 못하는 슬픈 조류지만 기지개조차 펼 수 없다니.
하지만 닭은 좀이 쑤실 겨를도 없다.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인간은 그 많은 닭들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진드기는 쉽게 생기고 해결책으로 살충제가 뿌려진다. 이따금 불어 닥치는 전염병으로 닭이 폐사되는 일을 막기 위해 강한 항생제도 처방된다. 전세계 항생제 70%는 가축에게 쓰인다고 한다.
닭똥은 투여한 항생제의 80%를 머금고 아래로 아래로 닭장 아래로 그대로 쌓인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닭알 위생, 위험성 등 문제는 피할 수 없다.
닭의 스트레스는 동물의 생명, 윤리와 연관돼 있기도 하지만 쯧쯧, 불쌍한 것들로 끝날 수 없는 건 이건 인간과도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닭의 알끈이라도 불리는 긴 무엇, 그리고 작은 출혈, 동그란 점 등을 본 적이 있는가.
축산물품질평가원은 편의점 달걀을 깐 소비자가 ‘이거 병아리 눈 아니죠’라는 게시물에 ‘계란 내부결함 중에 자주 발견되는 결함인 육반으로 추정’하며 “아주 드물게 아래 사진처럼 난관의 일부, 신체조직의 일부(장기)가 떨어져 나오기도”한다고 했다. 또 “육반이나 혈반은 주된 원인이 스트레스(산란과정, 또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예전에 아이친구 엄마가 “계란은 꼭 좋은 거 사먹으라고 하시더라고요. 특히 아이가 먹을 건”이라고 양계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친정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준 일이 생각났다. 좋은 거, 조금 더 비싼 건 닭의 사육환경이, 사료가 조금 더 개선된 것을 의미한다. 계란의 초록색 숫자를 보면 일반 소비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촌년이었다. 스트레스 안 받고 자란 닭의 알을 먹으면 좋겠지만, 한 판에 몇 천원이 더 비싼 걸? 계란이 계란이지 뭐. 이야길 흘려들었다. 나중에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알게 되며 아, 그게 그 얘기구나 생각하게 됐고, 아이에게 영양만점이라며 먹인 숱한 달걀이 생각났다.
모르면 용감하고 세상을 살기 조금 편하다. 그 사육장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정신적 스트레스, 성장촉진제와 살균제, 항생제 범벅이란 생각, 그 독한 화학제가 땅으로,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다.
태어난 병아리들은 행복할까? 전혀. 산업에 의해 수정되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수컷은 필요없다. 대부분의 수컷 병아리들이 사료를 축내기 전에 믹서기에 갈려진다.
닭의 알을 하나 두고 생명의 존엄함을 떠올리면 많은 생각이 오간다. 알면 알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복잡했고, 또 끝내 인간으로 사는게 참 구차하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복잡하지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원히 복잡하지 않니, 또 그렇길 간절히 바라니까.
풀기 귀찮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고 나면 시원하다. 나는 나와 이웃한 많은 이들과, 그 이웃과 이웃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들과 이 실타래를 풀고 싶다. 그리고 다신 마구 엉키지 않도록 배려하며 살고 싶다. 동물을 먹을 때는 그들이 살아있는 시간, 식탁 위에 오르기 전의 생에 대해서도 이어져야 한다. 굳이 동물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은 아직 개, 고양이 외 동물에 대해서도 생명이라고 인식하는 순수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강한 것에 대한 동경은 있으면서도 약한 것에 대한 연민은 어른보다 강렬한 편이다. 육아를 하는 이들의 SNS에서 보면 고기를 먹는 엄마 아빠를 보고 그릇을 뺏으며 “엄마, 아빠 나빠! 먹지 마! 먹지 말라고!”라고 우는 아이도 제법 많다. 이들도 크면서 자연스럽게 점점 잊어가겠지, 귀한 생명이 아니라 영양만점 고기라고 반복 학습되며.
이 모든 걸 생각하고 아이와 함께 <마당으로 나온 암탉>을 보니, 잎싸(주인공 닭)가 얼마나 쇼생크탎출 빠삐용 못지않은 탈출을 감행한 것인지.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래, 잎싹도 간절히 나도 내 새끼가 보고 싶어요, 라고 얘기했는데 어쩐지 마음이 죄스러워진다. 아무래도 당분간 계란프라이, 계란말이, 계란찜은 못 먹을 것 같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 두 손 위에서 노랠 부르며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 줘
마왕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부르다, 문득 맥모닝 세트가 생각났다. 굿바이, 얄리! 얄리에겐 유난히 잔인한 맥모닝! 어느 얄리의 굿모닝을 오늘은 기원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