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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7. 2024

# 1. 눈코입이 보이는 애들은 먹으면 살찐다.

프롤로그

- 오늘 곱창 어때?

- 나는 남의 장기를 안 먹어.

- 뭘 또, 장기야.

- 맞잖아. 소의 소장, 대장, 간. 순대는 돼지 귀, 허파도 있다. 어젠 티비에서 양 심장 요리가 우승하더라. 깜짝 놀랬네. 너무 빨개서. 

- 야, 그럼 삼겹살은 왜 먹어?

- 지방흡입 같은 거지.

     

맞다. 나는 애매하고 이상한 베지터리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베지터리언이 아니다. 삼겹살은 먹으니까.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애매하지만, 복잡하니까 그저 유난스런 베지터리언으로 분류하곤 한다.      


유별난 식성에 대해 궁금한 이들을 위해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까?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음식, 식재료부터 얘기하자면 대형가축은 살은 먹되 장기는 먹지 않는다. 소형가축은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 눈꺼풀이 없어 항상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올라와 배를 찔러 파헤치는 생선은 전혀. 전혀. 절대로 먹지 않는다. 토막 나도 토막 난 걸 퍼즐처럼 순식간에 전체를 상상할 수 있기에 먹지 않는다.     


물론 어린 시절엔 편식 없이 먹었다. 아직도 그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황금빛 갈치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생각난다. 고등어도 잘 먹었다. 살점이 얼마나 토실하고, 고소한 지 기억난다. 하지만 시기가 우연히 겹친 건지 모르겠지만, 동화 <인어공주>를 본 게 운명적 시작이었다. 


밥상 위에 올라온 애들의 동그란 눈과 눈이 마주친 뒤로 도저히 배를 파헤칠 수 없었다. 또래보다 작고 약했던 딸의 별안간 시작된 편식에 엄마, 아빠는 애가 탔지만 소용없었다.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아빠는 나에게 회 한 점을 먹으면 만 원을 주겠다고 했고,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생선 얼굴 위에 상추를 덮고 “이러면 못 먹겠니?”라며 웃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가진 나는 이들과 식탁에서 다소 껄끄러운 순간들을 자주 마주했다.     


오랜 시간 남들과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채 살아왔다. 곤란한 상황은 언제든 펼쳐지기에 궤변(?)도 늘었다. 바로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은 대부분 고기 마니아다. 고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같이 먹지 말자고, 극성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냥 물어보면 이유를 얘기하고, 그들은 입맛이 조금 떨어질 뿐이다.      


남들에게 이유를 굳이 설명해야 상황을 벗어날 수 있기에 여러 가지 궤변도 많이 늘었다. 육류는 사람 기준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살만 먹는 걸로. 야, 니가 먹는 식물도 생명이야, 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는 눈코잎이 기준이라 말한다. 대충 넘어가자고 웃자고 한 소리에 눈치 없이 죽자고 또 덤벼들면, 걔네(감자, 고구마)는 어리다고 방생 안하잖아, 방생한다는 건 인간과 같은 존재임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생각해도 제멋대로 편하게 사는 것 같지만, 꽤 피곤하게 사는 편이다.      


처음엔 생선구이, 나중엔 생선 전부. 그러다 점점 육류. 마침내 온전한 베지터리언이 되기도 했지만, 2003년 사랑에 눈이 멀어 짝사랑과도 같은 남친과의 데이트를 위해 삼겹살을 맛있게 먹는 걸 연기한 뒤로 남의 살은 잘 먹게 됐다. 나는 사랑도 얻고 콜레스테롤도 얻었다.


매년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식욕도 자극을 주면 텐션이 쭉쭉 올라간다. 입에 넣는 순간 게임 오버. 타고나길 식욕이 많은 채로 태어나기도 했다. 열다섯에 만난 한의사 선생님의 진맥 결과, 위도 장도 기능이 떨어지면 식욕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식욕은 있는 신기한 체질이라 밝혀졌다. 그런 내가 못 먹는 음식이 없어졌으니, 꽃다운 20대에 진짜 꽃돼지가 되며 30 이후 흑역사가 시작됐다.     

 

다이어트는 마침내 평생의 숙제가 됐다.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원푸드, 간헐적 단식, 디톡스 다이어트 등등. 하다하다 다이어트를 위해 삼시세끼 알맞게 잘 먹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게 요즘 다이어트 트렌드다. 영양소가 결핍되면 살이 더 안 빠진다는 건강한 논리의 다이어트. 


모락모락 피어오른 희소식에 소신껏 먹어봤지만 살은 더 올랐다. 굶으면 살이 더 찌는 체질이 된다더니! 잘 먹야 잘 빠진다더니!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더러 답답했다. 도대체 내 살은 안 빠지는 거야!      


그러다 마침내 알았다. 다이어트 진리는 단순명료하다. 살은 그냥 안 먹는 거, 운동 열심히 하는 게 최고다. 다른 이유는 모두 핑계고, 산업이고, 트렌드일 뿐이다.    


그냥 안 먹긴 정말 힘들다. 처음은 뭐든 쉽지만, 지속적인 식단으로 이어지기 힘들기 때문에 요요는 다이어트와 세트다. 그래서 이유를 만들어봤다. 그래, 어차피 안 먹는 거 이유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를 최대한 줄여보자! 5대 영양소도 고루 고려해서. 먹으면 나의 한 끼를 위해 희생한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식욕을 최대한 떨어뜨려보자. 나도 좋고, 지구에도, 생명에도 좋은 일 아닌가.      


아예 안 먹으면 죽는다. 다 살자고 하는 건데, 그러니 모두에게 무해한 건강한 식재료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건 비교적 비싸니까 조금만 먹는 거다. 물론 나도 마음처럼 안 된다. 취지가 좋으니까 노력은 해보는 거다. 모든 다이어트가 뭐 100%, 200% 성공해서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모든 이들이 얘기하듯 뇌 다이어트가 최고다. 뇌에게 주입하자, 내가 지금 뭘 먹고 있는지. 먹긴 먹되 끊임없이 생각하고 인지하고 숟가락을 들자.


아빠는 원래 개고기를 좋아했다. 그를 엄마도, 나도 말리지 않았다. 개인의 취향에 무관심한 편이었던걸까? 심지어 식당에 가면 따라가기도 했다. 밑반찬도 손을 대지 않는 내게 아빠는 왜?라고 물었고, 나는 개를 썰었던 칼, 그릇을 사용했을까봐, 라고 입맛 떨어지는 소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당시 잘 드셨다. 그런 아빠가 개고기를 끊은 건 점차 찝찝해서였다. 반복되는 ‘생명의 소중함’ 앞에는 장사 없다고 엄마가 일요일 아침 10년 넘게 틀어놓은 <TV 동물농장>에 식욕을 잃으신거다. 


기본적은 성선설에 기반해서 우린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조건 먹지 말자, 안 먹을래가 아니라 먹고 싶으면 먹고, 먹겠다는 이들 말리지 말고, 당신 앞에 무엇이 놓여있는지를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남보단 우선 나부터 음식이 되곤 하는 생명 앞에 대상을 구체화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사골국이라고 하는 것보다 소국물이, 보양식을 개고기라고 하면 어쩐지 입맛이 떨어지니까. 일석이조 아닌가? 너는 살고, 나는 날씬해지고. 조금씩 조금씩 식생활이 변하면, 라인이 날렵해지고 혈관이 깨끗해지고, 인생이 변하고, 지구가 바뀐다. 


그러니까 이 에세이는 웃자고 시작하지만, 결국 모두가 좋은 결과를 맞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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