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유 Sep 19. 2022

애플스네일과 함께 산다.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꾹꾹

정말 어쩌다 보니 마리모와 애플스네일과 동거하게 됐다.


게으른 나는 생명존중의 의미로 어떤 생명과도 함께 하길 원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정말 그렇게 됐다.


녀석들의 몸집(?)은 워낙 작아서 공간도 거의 차지하지 않고 생각보다 신경 쓰이지 않아서 "생각보다 괜찮은걸"이라는 마음으로 키우고 있다.


주방 창가에 두 녀석이 나란히 하고 있는데, 설거지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자주 가고, 그러다 보니 시간의 총량이 쌓여 키운 정이랄까.. 점점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않는 마리모는 뭔가 애틋하고,  애플스네일이란 녀석은 생각보다 굉장히 귀엽다. 이름빨인가 싶기도 하다.

(사과 달팽이라니. 이런 달팽이 같은 녀석!)


특히 녀석은 생각보다 빠르다. 애플스네일이 원래 달팽이치고는 빠른 종인지. 아님 내가 달팽이의 속도를 너무 무시한 것인지 모르지만.


문득 시선을 뒀는데 움직인다 싶을 때가 있다.


그땐 '어라, 움직이는 건가? 움직이는 거 맞지?' 눈을 의심하며 계속 보게 된다. 밀당처럼.


녀석은 분명히 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슥슥-이동거리는 눈에 뜨게 달라져있다. 귀엽게.





인생에서 노력이란 부분도 그런 것 같다.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은 잘 보이지 않는 것. 누적치는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것.


또 꾸준히 말도 안 되는 노력을 한다면 언젠가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 


우리 인생에도 인공위성이 달려있다면 우리가 매일 움직이는 노력들이 직선, 곡선처럼 물리적으로 보일까. 그렇다면 조금의 동기부여가 더 될 텐데.

 

오늘 이만큼. 그래. 이만큼 더. 조금만 더.
영차영차. 아주 귀엽지만 그 의미 있는 몸짓을.




생각해보니, 애플스네일과 나는 닮았다.


동글동글 하얗고, 어느새 뭔가를 다 먹어치우고

무척 느긋해 보이면서도

깜짝 놀랄 때는 굉장히 잽싸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천히 오래 계속,

슥슥, 슥 움직인다.

남들이 보든 보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혹시, 엄청 신경 쓰고 있었다면 미안하다)


나도 오래오래 뚜벅뚜벅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는 게 너무 좋아서 한껏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날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걸으러 나간다.


걷다 보면 느리게 걷는 내 옆으로 자전거도 따르릉따르릉, 전동 킥보드도 휙휙. 지나간다. 달리는 사람들도 훅훅 지나간다.

 

'이왕 운동하는 거 조금 빠르게 걸을까'라는 생각도 이따금 해본다. 하지만 생각뿐.


끝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아니까.


쉬이 지칠 일에는  욕심내지 않기로 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느린 것은 나쁘지 않다. 느린 것도 때론 좋다.


느린 것은 더디지만 꾸준할 수 있게 하고, 느린 것은 또박또박 바르게 꾹꾹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축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느리면 어때? 나는
오늘도 한발 한발 꾹꾹
빈틈없이 밟아 나아가고 있다.


















이전 10화 창작의 고통을 쓴 자! 그 무게를 버려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