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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Apr 12. 2023

제가요?? 퇴마록을요???

답답한 어느날, 점을 봤다.

답답하다. 요즘 굉장히 답답하고 힘들다.


생각보다 글이 잘 안 풀린다. 글은 안 풀릴  있다. 안 풀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간혹 현타가 아주 쎄게 온다.


아마 스스로를 잘 알기 때문이겠지.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걸 아니까.


아,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소질도 없는데...
시간만 버리고 있는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도대체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확 다 때려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붙들고 앉아 있기도 그렇고.. 신나서 쓸 때랑 답답해서 안 써질 때랑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건 똑같은데...내게는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생활의 차이가 있다.


초긍정적인 망나니는 가끔 만나는 좌절의 구렁텅이 골을 굉장히 조급하게 못견뎌 한다. 


아무 것도 할수 없고, 내게 뭐라 얘길 해주는 사람도 없으니...정말 너무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뛰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리저리 뒹굴뒹굴 하다가 누가 내게 뭐라고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극에 치달았을 때쯤, 떡 일어나서 점을 봤다.


온라인 타로 서비스를 이용했다. 후기를 보니 아주 용하다고 한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지 않아도 속시원하게 정확하게 상황을 얘기하고 미래를 본단다. 결제를 하고 상담이 언제 가능한지 물었더니, 역시 사람이 많다.


기다림 끝에 전화가 왔다. 두근.


-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 되게 긍정적이네?

(대뜸? 이렇게? 벌써? 대박! 용한데?)

- 아! 저요? 그렇죠? 제가 긍정적이에요.
- 뭐가 문제야? 뭐가 궁금해요?
- 저는 글을 쓰는데, 생각보다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올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해요.
- 롤모델 있어요?


그런 건설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질문을 받았으니 머리속에 생각나는대로 떠들어 본다.


- 저요? 아..김은숙 작가가 멋있고...뭐, 그렇게 되고 싶긴 한데...그건 좀 힘들 것 같고. 최근에 읽은 책 중에 황....

 (갑자기 말을 자르며 정색을 한다.)

- 왜요????? 왜 안 된다고 생각하죠?
왜! 본인의 한계를 벌써 그었죠?
왜, 우리 작가님은 김은숙 작가 같은 스타 작가가 되면 안 되나요?

- 아....................................
   아ᆢ그렇죠. 될 수도 있겠죠. 김은숙.
   그러니까요..되면 좋죠.. 아..


그렇게 나는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한참 정신교육을 받았다.


아, 덕담인데 왠지 더 답답하다.


그래서 이번엔 신점을 결제했다. 글을 읽듯, 눈에 보이듯,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읽는 정말 아주. 아주아주. 아주아주아주 용한 분이시라고 후기에 써있다. 


- 저, 글을 쓰고 싶은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해요.
- 뭘 쓰고 싶은데요?
- 저, 원래 글쓰기 전에는 동화를 쓰고 싶어서 써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소질도 없는 것 같고. 에세이랑 단편, 장편 쓰고 있어요. 아직 쓴지 얼마 안 되서 뭐에 소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직업은 잘 골랐네, 잘 쓰겠어, 다. 원래 글을 쓰면 스트레스 받는데, 본인은 글 쓰면서 막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지??
- 아! 네. 맞아요.
- 그래, 잘 할거야. 잘 맞아. 근데 지금 쓰는 장편은 무슨 내용인데?
- 자기 꿈을 쫒는 어떤 여자의 고군분투를 담았는데.. 쓰다보니..로맨스도 좀 있고.
- 그것도 좋네. 그것도 잘 되겠어. 그것도 좋긴 한데, 혹시 퇴마록 알아요?


????????갑분 퇴마록????????


지금 내가 잘 들은건가?

뭐지? 여기서 퇴마록이 왜 나와?


- 퇴마록요? 알죠. 근데 왜요?
- 퇴마록 같은 거 써볼 생각 없어요?  

- 아....................... 제가요? 퇴마록을요?

- 본인 상상력이 좋아. 그런 거 잘 쓸거 같은데.. 지금 그게 보여서.

- 아...네... 그죠.. 쓰면 좋죠.. 아... 근데... 그런 상상력이...제가?!.... 있나요? 제가..있을까요?


말을 머뭇거리고 더듬스타일은 아닌데, 2회의 상담에서 모두 말을 버벅거렸다.


너무나 당황했다. 결국 원하는 답은 어느 누구에게도 끝내 듣지 못했다. 그녀들은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에세이랑 소설을 쓰고 있는데, 그것도 지금 잘 안 써져서 상담을 요청했는데..... ㅠㅠ 시나리오도 써보라고 한다.


고맙네. 고마워라. 진짜 고맙기는 하다. 정말이다.


진짜 고맙기는 한데, 크게 봐줘서 참 눈물나게 고마운데..... 문제는 현실적인 나의 고민에 비해 너무 뜬구름 잡듯 먼 미래의,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것들이 많이 펼쳐져서 황당하다.


전화를 끊고서도 한참 생각했다. 갑분. 퇴마록의 타격이 컸다. 심히 충격적이다. 그래. 뭐, 도깨비도 있고 다 그런 판타지긴 하지. 너무 국한되서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아, 김은희 작가! 되면 좋지!! 얼마나 좋아! 김은희도 환상적인데 남편과 아이도 김은희의 남편, 김은희의 아이로 만들어 줄수 있고. 환상적이다. 정말.



그리하여,
동화작가가 되고 싶던 어떤 여자는
김은숙을 꿈꾸다가 김은희가 되기로
진로를 수정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직은
아주아주 답답하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 끝!!! (아...진짜.. 답답하네...) 학창시절 청소년기에 끝냈어야 할 진로고민을 아직도 하고 있다니ᆢ내 꿈. 나의 직업. 나의 미래.


꿈은.  이루어진다. (그려..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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