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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Sep 20. 2023

최은영의 소설을 읽다가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언어로, 마음을 구체적으로 끄집어낼수 있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 그런 마음.이란 말을 종종 쓴다.

근데 최은영은 이걸 다 정확하게 말로 표현한다.

일기장에도 쓰지 못한 그런 부끄러운 마음을, 오래전의 마음을 전부 끄집어낸다.

이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언어로 '마음'을 이야기할까.

- 김영하 작가를 보면서는 박학다식한데 상상력도 어쩜 저렇게 풍부할까 싶었고

- 정지아 작가는 타고난 글솜씨에 성장배경이 더해져 비교불가한 작가가 됐다 싶었다.

- 손원평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독특하고 예리한 어떤 시선, 그만의 관점을 느꼈고, 후에 사회학을 전공하고 영화작업을 한다는 이야기, 손학규 의원이 아버지라는 것을 듣고 '아, 어쩐지 소재를 보는 시각, 시선이 다르더라'라고 했다.

최은영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왜 그동안 나는 글을 당연하게 쓰고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 라고 처음 생각했다.

졸업 이후, 기자라는 이름으로, 카피라이터, 작가라는 이름으로, 밥 벌어먹고 살아왔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제는 돈 받고 쓰는 글 말고, 그저 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을 이렇게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가진 얼마간의 재주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도 마음이 있는데,

나도 솔직한 사람인데,

그리고 나도 글을 쓸 수 있는데도.

나는 저렇게 투명하게 하나하나의 마음을 끄집어내지 못하는데, 그런 마음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그 많은 마음들을 어렴풋이 '어떤 마음'으로 뭉개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책을 읽으며 모든 문장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마음을 두드릴까 싶다. 어쩜 최은영은 그럴까. 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말에서 용기를 낸다.

"한국소설 코너에 서 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안 되는 걸까, 한참을 서서 움직이지 못하던 내 모습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은 멀리 있었고, 점점 더 멀어지는 중이었다.


이년간 여러 공모전에 소설을 투고했지만 당선은커녕 심사평에도 거론되지 못했다.


그해 봄 애써서 썼던 <쇼코의 미소>도 한 공모전 예심에서 미끄러졌다. (중략)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망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하기 어려워 보였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 작가의 말

재능과 별개로 닮은 작가의 '그날' 모습에서 다시 용기를 얻어본다. 나도 '이날'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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