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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Mar 14. 2023

커피 골초

다 이유가 있지, 좋은데는

골초, Heavy smoker, Chain smoker
'담배를 아주 많이 피우는 사람을 칭하는 속어. 순화된 표현으로는 '애연가'라고 한다. 꼴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by 위키사전


그러니까 단어의 맛을 살리려면, 골초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꼴초. 그게 딱 적당하다.




카페를 갈까, 도서관을 갈까 잠시 고민한다. 역시 귀찮다. 도서관까지 가기가. 도서관 가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도서관으로 간다.


'역시 이렇게 움직이기 싫은 날은 반대로 움직여줘야지'라는 생각으로 청개구리처럼.


그렇게 도서관을 왔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2연타 당황했다. 이른시간인데.. 빼곡하다. 사람이.


내마음속 1순위, 2순위, 3순위 자리가 모두 찼다.


아...........카페갈껄.........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우뚝 서서 망연자실하다가 어쩔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나마 구석을 찾아 파고 들어서 등짐을 푸는 순간, 싸하다.....


 아...! 내 텀블러..


도서관을 가는 날은 텀블러를 챙겨와야 하는데, 놓고 왔다. 근처에 카페가 없어서 도서관을 가는 날은 꼭 텀블러를 챙기는데 오늘은 놓고 왔다.


머리속에 도서관 주변을 쫙 펼쳐본다.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카페까지 왕복 30분.

피같은 30분. 고작 3시간 앉아있는데.


에이. 어쩔수없지. 집에 갈수도 없고.


그냥 쓰기로 한다. 하지만 초조하고 불안하다. 아무래도 손에 안 잡힌다.


손도 시려워 자판 두들기기도 힘들다. 중요한 걸 놓친 것처럼 찝찝하다.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그래, 흐리멍텅하게 3시간 있는 것보다 얼른가서 사오자. 빨리 갔다오자.'


커피 한잔을 두손에 감싸쥐고 한모금 들이킨다.

개선장군처럼 어깨가 쫙, 펴진다. 기분이 좋다.


그래. 이 맛이지.


걷기 위해서는 음악이 필요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낮에는 커피, 밤에는 맥주가 필요하다.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와 셋이서 이야기를 했다.


커피를 연신 마시는 나를 보고 불현듯 생각이 났다는 듯 그의 친구가 먼저 말을 꺼낸다.


"요즘에 커피를 다들 많이 마시잖아. 근데 내 생각에 노다가판 아저씨들이 제일 많이 마시는 것 같아.

방학 때 공사판에서 일하는데 아저씨들이 자꾸 한잔씩 주시는거야. 그래서 어느 날은 새어봤어.

얼마나 드시나.

피곤하니까 권하고, 추우니까 몸 녹이라고 권하고. 서로 주거니받거니 계속.

종일 5~6잔 드시더라. 우와, 잠은 오시나 몰라."


순간 깨달았다. 아...나 정말 많이 마시는구나. 나는 당시 습관적으로 8잔을 마셨다.


요즘도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은 뭔가 멍하다가 순간적으로 번뜩 떠올린다.

아, 오늘 커피를 안마셨구나. 어쩐지.


한잔 마시면 온몸에 피가 돌고, 머리가 맑아진다.


종일 어딘지 기분이 언짢은 날은 '왜 그렇게 기분이 별로야?' 이유를 묻지도 않고, 남자친구가 한다.


"일단 얼른 눈감고 자."

"어제 잘 잤어. 누굴 잠충인줄 아나."

(물론 별명은 포켓몬의 지라치다.
천년동안 잠을 자다 딱 일주일만 깨는데, 아주 기분좋게 깨어있는 7일간 소원을 들어준다.)


"그래? 그럼 우선 커피부터 한잔 마셔."


너무 날 쉽게 보는구나, 내가 그렇게 단순한 인간인줄 아나, 다소 언짢은 마음으로 커피를 주문한다.


놀랍게도 커피향이 삭~ 풍기는 순간 온몸의 근육이 쫙~ 이완되는 듯, 심장 근육이 노~곤하게 풀리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진 내게.. 다시 촌철살인하는 그.


"커피가 담배처럼 기피대상이었으면, 너도 참.
곤란할 뻔했다. 너 정도면 커피꼴초야. 꼴초."  


흐음..다소 무안하지만 부정할수 없다.


뭐, 하지만 괜찮다. 모든 것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와 단짝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다소 몸에 좋지 않을지언정, 커피를 마셨으니까! 커피를 마셨으므로! 나는 쓸수 있고, 써야 하고, 오늘 몫을 하게 된다.


커피 한잔 하고 슬슬 해볼까나? 으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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