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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07. 2022

평범한 이가 평범하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

함께 걷는 힘, 축제와 시위

걷다 보면 두둥실 뜬 구름을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생각과 의식의 흐름은 어디에 닿을지 예상할 수 없는 곳에 다다른다. (오늘은 잡담을 늘어놓으려니 서두가 길다.)




살아있는 미국의 저술가, 비평가, 역사가, 여권운동가인 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이란 책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란 종종 일종의 경험입니다.

공적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한데 모이는 경험,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경험,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걸어가는 경험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힘의 경험입니다.


근데ᆢ요즘은 좀 아름답나? 그런가?모르겠네.


세상이 조금 시끄럽다. 뉴스가 지저분하다. 고등학생이 그린 그림 하나로 왜들 이렇게 시끄러운지..


'다들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들 나름대로 예민하게 날을 세울수 밖에 없는 구석이 있겠지. 아마 그럴거야.


골 아프고 머리 아픈 걸 싫어한다. 내 한 몸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지끈지끈한 일이 많으니까. 새치가 둥지를 틀지 않은 나의 젊음을 조금 유예하고 싶다. 아직 뿌리 염색을 하지 않는 건 나의 작은 자부심이자 자랑이다.


그런데 지끈지끈하다. 머리가. 속이 시끄럽구만.


아무래도 곧 흰머리가 생길거 같다.





나는 단순하고 쉽게 흥분을 잘한다.


해외여행을 가도 지옥철처럼 번잡한 시내에서 사람들이 어설픈 외국인인 줄 알고 새치기를 하거나 밀고 들어오면 참다 참다 나도 모르게 "쫌!!!!!"이라고 한국말로 소리를 버럭 지르는, 그들을 주춤하게 만드는 다혈질과 목청을 타고났다. 목소리 탓일까. 흥분했다는 오해를 잘 받고(오해가 아닐지도 모르지) 무난하고 평범하게 생긴데 비해 잘 튀는 편이다.


태어나서 보니 아빠가 회사 노조위원장이었고, 장구가 멋져 들어간 대학동아리가 탈춤패였다.


글을 쓰다 보니 대학 방송국에 있었고, 직장을 다니며 기자생활도 했다. 남친은 어쩌다 보니 정외과 학생이었다. 남친은 붉은 얼굴빛을 가졌고, 국회에서 알바를 했다.


흘러가는 방향이란 게 있다. 나도 몰랐는데, 의도하지 않았는데...이렇게 흐른 이미지가 조각조각 모여져 어쩌다 보니 운동권으로 보는 사람이 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운동권 세대가 아니다. 소질도, 자질도 무엇도 없는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다큐멘터리, 교양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3.1 운동, 민주화 운동 등을  했던 그들의 모습은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가슴이 심장이 꽉 뭉쳐져 쓰리고 아프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에 시작된 생각이 '나도 할 수 있었을까?'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고개가 저어진다. 


자신없다.

나는 이기적이다.  

끄러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생각보다 튀는 목소리와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나는 '화가 났다. 흥분했다'는 오해를 잘 받고 이 말을 들으면 진짜 화가 더 나고, 흥분하게 돼 사전에 그런 오해를 차단하고자 한다. 튀면 피곤하다. 항상 묻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싫어하는 주제가 몇개 있다. 정치 얘기, 종교 얘기 같은 것들.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다들 처한 상황이 다르니, 입장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겠지. 딱 거기까지가 좋다.


그런데 니가 틀리고, 이게 맞고의 분위기가 형성되면 심보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해서, 불편한 얘기를 싫어하고 피하는 편이다.


불필요한 마음이 너무 쓰인다.


가끔 뉴스 등을 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흥분을 할때가 좀 있는 것 같다. "요즘 정치에 관심 많나봐"라는 말이 귓전에 거슬린다. 발끈해서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정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

근데 나처럼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이 자꾸 나라 돌아가는 거, 세상 돌아가는데 신경 쓰이고
관심이 생기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정치 관심 없고 잘 놀고, 잘 살던
욕심 없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게 성난 민심이야.

나 따위는 신경 안 써도
평범하고 평화롭게 잘 굴러가는
세상에 살고 싶다.




다 같이 둥글게 둥글게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틀렸을 땐 틀렸다고 사과하고, 돌려줄 건 반드시 돌려주면, 다툴 필요 있을까.


너만 탓할 생각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과오를 인정하고 자신이 틀림을 얘기하고, 사과하고 제자리에 몫을 돌려줄 때

'진작 그럴 것이지'라고 핀잔주지 않고 '잘했어. 지금이라도 고마워.'라고 안고 포용해줄 수 있는 여유가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현실과 괴리된 너무 큰 이상일까.


꼭 서로 피를 흘리며, 아니면 어느 한쪽이 피가 터지는 시위를 해야 말을 들을까. 


그래, 필요하면 싸워야지.


축제와 시위는

참가자 모두 함께 걷는 이벤트지만,

그 의미가 상이하다. 결정적으로 축제는 아름답지만, 시위는 그렇지 못하다.  


축제는 모두가 반기지만

시위는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계절이 되었다고

축제가 필수는 아니지만,

어떤 계절에 시위는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다. 


아름다운 민주주의 사회라. 그곳은 축제많은 곳도, 시위만 빈번한 곳도 아니겠지.


적절할 때 적절한 축제 같은 시위가 펼쳐지고, 참가자와 사회 구성원 모두 마땅하고 합당한 시위의 성과물을 달디단 열매처럼

모두 맛볼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세상이겠지.


내가 관심 없고, 무식한 채로 그저 마냥 걷는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면 좋겠다. 그저 걷기가 가장 좋은 거니까.




화가 나지 않았다. 관심없다는 얘기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하는 걸보니 조금 흥분한 것 같기도 하다. 두서가 없다. 다시 뜬구름이나 보면서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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