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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차를 마시며 아버지를 그리다

by 페트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의 여러 가지 수치가 안 좋아집니다.

저는 지금 전립선 항진증과 갑상선 수치가 안 좋아지며 두 가지 약을 복용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건강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위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나이대에 안고 있는 혈관질환, 특히 고혈압 고지혈 당뇨같은 브랜드 질병이 없으니 지금까지 제 건강을 잘 이끌어 준 몸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전립선 치료 의사의 처방에 따라 그 좋아하던 커피를 거의 끊~~~지는 못하고 하루에 한 번만 고정하여 아주 연하게(사실은 커피 색깔이 나는 커피물이죠) 마시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과 점심 두 잔씩 따뜻함을 넘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삼사십분 동안 식혀가며 음미하는 소확행이 없어진 것에 큰 상실감을 느낍니다.

아버지(따아).jpg


대신 전통차 마시는 것으로 취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통찻집이 아닌 어느 커피숍에 가더라도 대추차, 쌍화차, 생강차, 모과차 중 한 가지는 반드시 있더라구요.

그 중에서 쌍화차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꼭 주문해 마시곤 합니다.

쌍화차를 마시며 옛날 얘기와 더불어 자리가 정감있게 익어갑니다.

물론 대화하는 분이 쌍화차를 이해하는 세대일 때만 꺼내죠.




이 얘기는 잠시 후 하기로 하고 쌍화차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원래 쌍화는 둘 쌍(雙)과 조화로울 화(和)라는 의미로 우리 몸의 음과 양, 기와 혈을 조화롭게 해준다는 의미랍니다.

몸과 마음이 허해졌을 때, 피곤이 쌓이고 몸이 축 날 때, 근육이 뭉쳤을 때, 과음했을 때, 감기 초기일 때 온갖 약재가 많이 들어 있는 따끈따끈한 쌍화탕 한 잔을 마시면 기운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약, 황기, 천궁, 당귀 등 여러 한약재를 넣어 우려낸 쌍화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 감기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쌍화차 성분으로 출시된 ‘쌍화탕’도, 비록 마시기 좋은 드링크제일지라도 감기에 걸리면 많이들 찾는 의약품이죠.




이와 비슷하게 유럽에서는 감기 완화나 예방을 위해 와인을 따뜻하게 끓인 뱅쇼를 마십니다.

뱅쇼는 프랑스어로 ‘따뜻한 와인’이라는 의미이며 와인에 오렌지, 레몬, 사과 등 과일과 계피, 바닐라, 생강 등 향신료를 넣어 끓여서 만듭니다.

와인과 과일에는 비타민C가 가득 들어 있는데, 비타민C는 면역력 개선, 감기 예방,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는 성분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쌍화차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로 마치고 잠시 타임머신에 탑승하여 조금 전 하려던 얘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아버지(뱅쇼).jpg




과거 다방 메뉴 중 ‘후라이’가 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아마 제 또래의 친구들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 많은만큼, 아마 계란 프라이 메뉴를 걸었던 다방이 저희 아버지의 단골집이었나 봅니다.




지금이야 카페에 가는 연령이 정해져 있지 않지마는, 옛날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음습하며, 영화 ‘쉬리’에 나오는 수족관이 있는 다방은 어른들만의 공간이었지요.

그런데 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다방에 출입을 했습니다.

출입한 때도 정해 있습니다.

어렸을 적 병약하여 병원을 자주 드나든 저이기에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다방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수족관 다방).jpg




병원과 다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실겁니다.

그 연결고리는, 자식의 영양결핍을 우려하시는 아버지의 애정어린 판단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이야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따지며 균형있는 식단을 추천하는 시대입니다마는, 당시는 무조건 잘 먹어야했기에 저는 병원(시내)에 다녀올때에는 바나나며 번데기며 게란 프라이를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철없는 시절 병원에 가기는 싫었지만, 아버지와 함께라면 무엇이 부상(?)으로 주어질 줄 알았기에 은근히 기대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린 저에게 계란 프라이를 시켜 주시고 당신은 쌍화차를 드시곤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대부분의 아버지 친구분들이 제게 용돈까지 주시니, 담배 연기 자욱한 다방은 싫었지만 결코 싫지만은 않은 아버지와의 동행이었습니다.




이렇듯 아버지께서 챙겨 주신 단백질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다시 한 번 느껴집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월급날이면 당시 우리로서는 귀하디 귀했던 라면 한 박스를 꼭 사 놓으셨습니다.

라면 봉지에 계란이 먹음직스럽게 깨어져 있는 그림이 있는 라면을요.

당시 한박스는 50여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삼남매였던 우리집에서는 하루에 한 개씩만 먹어도 산술적으로 보름 이상은 버텼어야 당연했지요.

그치만, 우리 남매는 학교에 갔다와서 또는 밤에 공부를 하다가 무시로 먹어댔으니 일주일 정도면 한 박스가 동이 났지요.

그래도 3주 동안 손가락 빨고 있으면, 여전히 또 다시 한 박스가 채워졌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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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얘기를 접고 다시 쌍화차로 돌아와서, 저는 요즘 쌍화차가 있는 카페를 많이 알아 두고 지인들을 만날 때 그 곳으로 약속을 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쌍화차를 마시면서 추억을 나눕니다.

추억을 같이 한다는 것은 소중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차 한 잔 이상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자연이 준 선물과 그 속에 담긴 지혜, 그리고 가족과의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쌍화차는 제게 있어 단순한 차 이상의 특별함, 아버지와의 만남을 선사합니다.




10월 3일! 아버지 기일이 다가옵니다.

쌍화차는 아버지와 저 사이의 특별한 매개체입니다.

저는 그 차가 가져다 주는 자식 사랑의 온기 속에서 아버지를 다시 한 번 그릴 수 있게 되고, 그 사랑은 저를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지금도 쌍화차를 마실 때면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자식 목구멍으로 무언가가 넘어갈 때가 부모의 큰 보람이라죠.

후라이를 게걸스럽게 먹는 자식을 보며 흐뭇하셨을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이 따사롭습니다.

쌍화차는 단순한 차 이상을 넘어, 하늘나라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귀한 음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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