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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Jan 24. 2024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속 사람을 그리는 동안

사람 그리기 연습, 내가 그리고 싶은건 이런거였어  

  밴쿠버에선 보기 드문 눈이 밤새 펑펑 내렸다. 간밤에 20cm가 넘게 눈이 쌓였고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창밖을 보니 타운하우스들 사이에 자리한 네모난 공터에 이미 아이들이 나와 뛰어놀고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아주 커다란 눈사람의 몸통 위에 역시 커다란 머리를 올리려고 애쓰는 가족이 보였다. 너무 커다래서 들 수 없는 것 같았다. 얼마간 낑낑거리다가 한명이 썰매를 가지고 나와 눈사람의 몸통 앞에 누워 썰매를 자신의 몸을 받침대 삼아 비스듬히 놓았다. 머리를 썰매로 굴려 올릴 생각인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썰매로 머리 올리기에 실패한 가족들은 썰매를 내리고 사람의 몸을 지지대 삼는 듯 보였다. 침대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유쾌하고 바보 같은 가족들의 천진난만함을 보며 내가 그림으로 쥐어보고 싶은 순간은 이런 장면인 것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찰칵 하고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것으로는 내 마음에 몽글 몽글 피어오른 온화한 어떤 것의 여운을 즐기기엔 조금 심심했다.


  이 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전체 학교가 휴교를 했다. 대학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이른 아침에 본 풍경 때문인지 나도 눈사람이 만들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눈사람을 만든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남편과 만난지 10년이 되었는데 우리 둘의 기억에도 없었다. 장갑에 방수 부츠를 신고 밖에 나갔더니 이미 많은 눈사람이 이곳 저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온 세상은 하얗고, 신발은 발목까지 폭폭 눈에 빠지고, 어디에나 눈사람을 만드는 친구들 가족들이 걸렸다. 법대 건물 앞 야트막한 언덕에는 어린이들이 잔뜩 나와 눈썰매를 타고, 한켠에는 이글루를 만들고 있었다. 신나게 날씨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옮은 우리는 키 큰 나무들이 모여있는 길 안으로 들어섰다. 워낙 키가 큰 나무 덕에 밖과 단절되어 고요했다. 우리는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동그랗게 굴려지지 않아서 손으로 토닥 토닥 두드려가며 눈사람을 만드는데 그저 즐거웠다. 외국 스타일로 3단 눈사람을 만드려고 세 개의 눈덩이를 만들어 올리고 오는 길에 주워온 나뭇가지로 눈도, 팔도 만들었다. 눈사람을 만드는 동안 한 노부부가 지나가면서 오늘 본 중 가장 날씬한 눈사람이라고 했다. 우리의 첫 눈사람, 날씬하고 귀엽게 웃는 눈사람. 그 옆에 작은 눈사람을 더 만드는 동안 큰 푸들과 산책하는 사람도 지나가며 눈사람을 칭찬해줬다. 눈길을 걸어가는 개와 사람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웠고,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해서 눈사람의 얼굴을 다듬는 남편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저 사람은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오직 그것만 본다. 일일 도자기체험 같은데 갔을 때도 나는 적당히 만들다가 흥미를 잃을 때쯤에도 골똘한 얼굴로 컵의 모양새를 다듬고 있었다. 여전한 그 모습에 왜 진작 눈사람을 만들러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즐겁게 눈놀이를 하다가 추워질 때쯤 집에 돌아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아이패드의 그림그리기 앱 프로크리에이터를 켰다. 눈사람을 만드는 남편의 뒷모습, 푸들과 함께 걸어가던 사람의 뒷모습, 아침에 창 밖으로 보았던 가족들의 모습. 그런 것들을 하나씩 그려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귀여운 그림들이 그려졌다. 사람을 그리면 너무 어렵고 비율이 이상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엔 맘에 닿은 모습들을 그려서인가? 귀여운 사람들과 강아지에 색을 입히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지난번 어반스케치 모임에 나갔을 때 내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 연재를 시작했는데, 2주만에 순수하게 즐기며 그림을 그리게 되다니.


  이번 주에도 시간이 날 때 조금씩 사람을 그렸다. 지난 주에는 머리와 몸과 다리의 비율조차 알 수 없었고, 걷는 사람들의 다리가 어떻게 꺾인 건지 알 수 없었는데 이번 주에는 조금 나았다. 대신 발의 크기를 알 수 없었고,  머리에서 귀와 눈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모르지만 모르는 부분이 조금 더 구체적이게 느껴졌다. 함께 모여 있는 사람들을 그릴 땐 이 사람 저 사람의 비율이 제각각이었는데, 이번엔 나란히 걷는 사람들을 그리며 세 사람이 하나의 그림 안에 들어간다는 것에 집중했다. 몇 명 그린다고 내 그림이 나아질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동안 몇 명 그렸다고 조금 나아진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매일 매일 거창하게 두세시간씩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게 아니라, 30분씩 한 두사람이라도 그리는 작은 노력으로도 변화가 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가깝게는 내 몸이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취미를 잘 가꾸었으면 좋겠다. 나는 순수하게 재미있기 때문에 취미 생활을 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다. 기왕 하는거 잘 하면 좋겠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내가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들은 가끔 나를 답답하게 한다. 나의 부족함이 선명하게 인식되는 날에는, 내 몸은 왜 이런걸까, 내 의지력은 왜 이런걸까. 왜 더 친절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더 선하지 못한걸까. 같은 생각들을 한다. 내가 바라는 더 나은 내가 되는 길은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런데 2주 간 조금씩 그림을 그리며 어렴풋이 느낀다. 아주 조금만 신경써서 작은 노력을 쌓아도 눈에 보이는 변화를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와는 분명히 달라진다는 것을.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그림을 그려야겠다. 좋았던 순간을 그리다보면 머릿속이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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