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신기한 재능이 있다.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재능이다.
나는 잘 본다.
누군가의 안경이 달라진 것도, 머리 모양이 조금 변한 것도 금세 알아차린다. 키우는 나무의 새싹이 어제보다 미세하게 조금 더 자라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눈빛과 표정만 보아도 그 사람의 마음결을 감지한다.
나는 잘 듣는다.
잘 경청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소리 자체를 예민하게 잡아낸다. 선율의 미세한 차이,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목소리에서 풍기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느낀다. 고등학생 때는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만으로 반 친구를 맞히곤 했다. 한두 마디의 대답 속에서도 상대방의 컨디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두 재능은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집중이 어렵고 산만할 때가 많다.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새로운 것이 보이면 그게 뭔지 궁금하다. 책을 읽다 관련 구절이 보이면 금세 다른 찾을 찾아야 하고 강의를 들을 때도 작은 의문 하나에 생각이 흩어져 다시 내용을 귀에 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생각의 늪에 빠져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귀를 열고도 듣지 못한다.
무작정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듣는 힘이 필요하다. 바로 정신의 힘이다. 정신의 질서가 서 있어야 비로소 목적지를 뚫고 나갈 수 있다. 질서가 먼저인지, 목적지 설정이 먼저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둘은 같이 가는 친구다. 시행착오 속에서 질서를 세우든, 목표를 정해 그에 맞춰 질서를 다잡든, 결국 중요한 것은 정신의 힘과 목적지다. 그 힘이 있을 때 갈팡질팡 우왕좌왕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느낌에는 제한이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누구에게 집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그를 향해 사랑의 의지를 집중해야 한다.
나는 타인의 마음이 잘 보이고 들려서 때론 휘둘리곤 한다. 그러나 요즘 점점 알아가고 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나의 정신부터 다잡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바로잡힌 탄탄한 정신의 힘을 통해 나의 능력의 한계를 키울 때 더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진짜 재능이 있다. 한계를 넓혀 나가는 게 내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