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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쉼의 교향곡

by 서린

책을 읽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두뇌는 분주히 가동된다. 현재에 머무르기보단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재빠르게 넘나드는 시간여행 속에 들어간 듯하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릴은 꽤나 즐겁지만 때론 쉼이 필요하다.



똑같은 행위라도 쉼이 필요할 때는 생각을 멈추고 감각에 집중한다.


책의 촉감을 느낀다. 왼 손으로 책을 쥐었다가 손목을 뒤집으며 앞면과 뒷면을 번갈아 살펴본다. 그 사이로 전해지는 책의 묵직한 무게를 음미한다. 페이지를 스르륵 넘기며 종이의 두께와 함께 느껴지는 손 끝의 감각, 그리고 종이 사이에서 풍기는 코 끝의 감각에 집중한다. 종이마다 그리고 세월의 무게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 사라락 들려오는 페이지 넘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원하는 페이지에 멈춰 종이 한 장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이어 글자체와 활자 간격을 눈으로 더듬는다. 문장을 천천히 따라가며 단어가 주는 울림을 마음에 머금는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느낌만 고요히 머릿 속에 담아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쉼'으로 들을때도 마찬가지다. 목소리에 집중한다. 소리가 머리에서, 목에서, 가슴에서, 혹은 더 깊은 곳에서 나는지 살펴본다. 가슴을 닫고 힘차게 내는 목소리에서는 영혼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감정을 다스리고 힘차게 나아가는 기운과 에너지가 전해진다. 흡사 목관악기나 금관악기의 연주 같다.



반대로 가슴을 열고 성대의 긴장을 풀어 멀리 울리는 목소리에서는 영혼의 진동이 함께 울린다. 마음 속 깊은 감정에 머물게 된다. 그때는 내용보다 울림에서 주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다. 현악기처럼 훨씬 더 절절하고 간절한 느낌이 난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때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때론 감정을 다스린 말을 때론 감정으로 호소하는 말을 뱉는 상황의 차이, 사람의 차이 아닐까.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는 행위는 내게 때로는 일이고 때로는 쉼이 된다. 일로 접근할 때는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보이지 않는 티키타카가 오간다. 내가 마치 타악기가 된 느낌이다. 쉼으로 접근할 때는 대상과 영혼을 주고받으며 긴장이 풀린다. 일과 쉼의 반복 속에서 상대방의 에너지를 흡수하기도 상대방의 영혼과 함께하기도 한다. 우린 공명한다.



삶에서 '일'이 위주였다면 요즘은 '쉼'이 늘고 있다. 후자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삶은 더 여유롭고 감미롭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종종 전자를 택한다.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두 가지를 상황에 따라 오가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리듬을 맞추어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이게 바로 나만의 인생 교향곡을 연주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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