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리정돈 그리고 글쓰기

by 서린

깨끗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 청소와 정리정돈. 청소는 더러움을 닦아내는 일이고, 정리정돈은 물건을 비우고 제자리에 두는 일이다.



나는 청소를 잘한다기보다는 무엇이든 깨끗이 쓰는 것을 좋아한다.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해 즉각 치우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무언가를 흘리거나 엎지르면 곧바로 닦는다. 무언가를 쏟았을 때 아이들은 “엄마, 미안해”라고 말하며 즉각 스스로 닦으려고 한다. 분명 엎지른 것은 잘못이 아닌데도 마치 잘못했다고 느끼게 행동해 온 게 아닐까 싶어 번번이 반성하게 된다.



책에서는 이렇게 하라고 한다. “Uh-oh~ 엎지를 수도 있지~ 닦으면 되지~~” 그러나 현실의 나는 차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아이들이 김통을 몰래 꺼내다 바닥에 잔뜩 검정 김가루를 쏟아버린 날에는 “이거 이거 누가 이랬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Uh-oh~ 닦으면 되지~~’와 같은 콧노래를 흘리려면 평소 마음을 많이 절제해야 한다. “침착해. 일부러 한 게 아니잖아. 내가 대신 닦으면 아이들이 스스로 치울 기회를 잃어버려. 웃으면서 닦으라고 하자. 호호호.” 이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야 한다.



정리정돈의 영역은 약간 포기 수준이다. 정리정돈도 순서가 있다. 정리가 먼저고 정돈이 다음이다. 정리는 버리는 행위고 정돈은 질서를 세우는 행위다. 정돈은 잘하지만 비워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일까 만들어내고 소비하고 채워 넣기 급급했던 삶이었다.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데 아주 일가견이 있다 보니 버리기가 어렵다. 스스로 정리에 대한 철학을 세우고 실천까지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니 안드로메다 급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노자와 장자를 읽으며 삶에서 비움을 진짜 실천하려고 애써왔다. 근 1년간은 진짜 잘 비워내고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버려야 정돈이 잘되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쉽게 버리지 못한다. 아까워서 왠지 나중에 써먹을 것 같아서. 그래서 하나의 글에 오만가지 생각을 담다 보니 글이 자꾸 길어진다. 그래서 짧은 글을 써보면 오히려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간결하게 핵심만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정돈은 문장을 간결하게 다듬고 어휘를 고르고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바로 잡는 일이라면 정리는 그전에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즉 불필요한 아이디어를 과감히 버리고 하나의 주제만 날카롭게 뽑아내는 일.

정리가 먼저고 정돈이 그다음이다.



오늘 글을 쓰며 배운 것이 있다.


첫째, 더러워져도 조금은 참아내는 힘이 필요하다.

둘째, 버려야 정돈할 수 있다. 비워내고 또 비워내자.

셋째, 글을 쓰니 내 삶이 다시 보이고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더 명확해진다. 글을 쓰자.





Untitled_Artwork 28.jpg


keyword
이전 23화긴장 안아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