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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삿갓 Aug 26. 2024

EP.13 양구→인제 27km

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밤새 내렸던 비는 아침이 되자 그쳤다. 흐린 날씨 아래, 인제로 향했다. 날씨 때문인지 몸이 무거웠다. 지금까지 평발임에도 걷기가 힘들지 않았는데 발바닥이 아파왔다.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이상하네?'라고 생각할 뿐 계속 걸었다. 다행히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첫 번째 짧은 터널을 지나고,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그리고 신기한 풍경이 보였다.


태풍의 눈처럼 가운데만 맑은 하늘이 보였고, 주변은 흐린 구름으로 가득했다. 신이 숟가락으로 가운데만 휘저었나 보다. 다시 뒤를 돌았다. 풍경과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가야 했다. 먹구름은 산의 웅장함을 더욱 집중시켰다. 강원도에 와서 매일 드는 생각이 있다. 인간은 티끌같은 존재지만 신기하다. 저 하늘, 바다, 산에 비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한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비바람이 불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지닌 나무들이 늘어간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봄이 찾아오면 또 새로운 잎이 날 것이다. 나무도 그걸 알고 있는 것일까. 비바람이 자신의 옷을 벗겨내지만 저항 한 번 하지 않는다. 사계절 내내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서 있는다. 나무라 한들 누가 비 맞고, 눈 맞고, 바람에 쓰러지고 싶을까. 그저 순리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흘러가게 두는 것이다. 태풍에 본인의 몸이 꺾여 나가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연의 모습을 보니 내 모습을 떠올린다. 작은 어려움에도 흔들렸다. 하기 싫어 회피하고,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다. 무슨 일에도 일희일비하니 지쳐갔다.


인생에 있어 삶과 죽음은 순리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고난과 역경도 순리다. 당연하기에 자연히 받아들이면 된다. 작은 바람도, 큰 바람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또 다가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더 단단히 대비하면 된다. 그러니 이제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잘 지나가게 해보자. 저 나무들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우회 도로로 빠지지 못하고, 터널 하나를 더 지났다. 덕분에 거리가 짧아져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걷다가 길 잃은 아저씨를 만났다. 더덕을 캐러 왔는데 산길을 잘못 타고 내려왔다고 한다. 인제 방향으로 간다기에 동행했다. 아저씨는 굉장한 등산가다.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산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키나발록 산은 높이 4,095m라고 하며, 완등을 하면 수료증도 준다고 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천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천지 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경비원, 청소부가 1명씩 있었다고 한다. 보트를 타고 천지를 건넜어야 했는데 인당 5,000원을 주고 건넜다고 한다. 16명의 동료들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통행료로 큰돈이 벌리니 천지에서 점심을 먹고 가라고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메이커 모자를 알아보고, 모자를 주면 천지 중앙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거래를 했다고 한다. 아저씨는 천지에서 점심도 먹고, 한가운데까지 다녀온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흔한 경험은 아니었기에 지인들에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싸온 송편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1시간가량 함께 걷고 나서야 동료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길동무가 되어 준 아저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떠났다.


옆으로 버스가 지나갔다. 길동무였던 아저씨가 탄 버스였다. 흐릿했지만 창문 안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힘껏 두 손을 올려 반응했다. 숙소에 가까워질 때쯤 무릎이 아파졌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무릎 통증이 조금 사라졌고 숙소로 향했다. 지친 무릎에게 이제야 긴 휴식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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