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자는 오솔길, 해변 길처럼 아름다운 길만을 걷지 않는다. 특히 지역을 이동할 때는 위험이 따른다. 국도를 이용하는데, 갓길에 그려진 노란 선이 유일한 보호장치다. 그럼에도 걷는 이유는 살아가는 이유와 비슷하다. 하루하루가 힘든 것만은 아니니까, 힘든 상황 속에서도 피식 웃을 수 있는 일이 생기니까,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를 지나는 중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 발길이 끊긴 곳은 고요함만이 남고 적막을 깨는 건 겨울바람뿐이었다. 이번에도 그렇겠거니 싶었는데 ‘미로휴게소식당' 내부는 환했다. 호기심과 배고픔이 뒤섞인 관심은 발길을 식당 쪽으로 향하게 했다. 문을 열었다. 허리가 굽고 안경 낀 사장님은
“가방은 밖에 두고 들어와요!”
라고 말했다. 밖에 놓인 의자에 가방을 놓았다. 누가 훔쳐갈까 걱정됐다(한국에서, 그것도 이런 시골에서 도난을 걱정하다니 이런 철두철미한 자식 같으니라고).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일곱 가지 반찬과 고봉밥, 찌개가 나왔다.
“이 김치찌개가 왜 이렇게 보글보글 끓는다니! 다 넘치겠네”
건네받은 김치찌개 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신김치로 만든 찌개 맛은 새콤했다. 손님이 나밖에 없었지만, 사장님은 분주했다. 얼마 있다가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멈췄다. 사장님이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계란프라이 좋아해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툭 하고 놓았다(눈빛만 봐도 알았을 것이다). 식당이 운영한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는데, 생각지 못한 호의에 어안이 벙벙했다. 무협 소설에서 우연히 기연을 얻은 주인공이 이런 기분일까. ‘이게 말이 돼?’ 기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휴게소를 지나 얼마 걷지 않았을 때였다. 멀리 정차해 있는 차량이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데 차에서 소리가 들렸다. 운전석엔 아버지가, 조수석엔 딸이 있었다.
"하나 주면 돼~"
운전석에 있는 남자의 목소리에 아이는 겁먹은 듯 우물쭈물했다. 아버지의 외침이 한 번 더 들리자, 음료를 건네줬다(거대한 가방을 멘 채, 수염이 잔뜩 난 꾀죄죄한 차림의 삼촌이 무서울 법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은 감수성을 건드려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자에게 주는 신의 선물일까. 브루스 채트윈은 말했다.
“제 신은 보행자들의 신이지요. 누구나 오래 걷다 보면 아마 다른 신은 필요 없을 겁니다"
걷기를 멈추지 않는 한 보행자들의 신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힘들지라도 이따금 찾아오는 축복이 있기에 나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