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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I Jun 02. 2023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게 더 힘들어진다.

"난 이제 기댈 엄마도 없어"

한 5년 전쯤 제일 친한 30년 지기 친구 집에서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루에서 주무시던 친구 어머니께서 깨셔서 친구 방으로 넘어오셨다. 그리곤 우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때만 해도 난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는 게 편해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보다 5살 많은 언니가 마흔이 넘으니 안 아픈 곳이 없고, 체력이 떨어져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조차 너무 괴로울 정도로 힘겹고, 기댈 남편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고, 앞으로 혼자 짊어질 세상이 두렵다고 징징댈 때마다 솔직히 속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모든, 뭐든 많이 해볼수록 스킬이 쌓이는 건 당연지사니깐... 나이가 들고 삶을 살아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쉬워지지 않을까? 더 익숙해지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쯤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힘들었던 인간관계에 조금은 미련을 버리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던 때라.. '역시, 나이 드니 좋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날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우리들에게 친구 어머니는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너네는 그래도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좋을 때고 제일 편할 때인 거야.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사는 건 점점 힘들어진단다.
그래도 너넨 아직까지 부모님이 살아계시잖니.
난 이제 기댈 엄마도 없어.
그래도 너넨 아직은 기댈 엄마, 아빠라도 있잖아.





그 얘기를 듣고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살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우리 엄마, 아빠도 언젠가는 돌아가시는 존재이며, 난 언제라도 세상에 혼자 남겨질 수 있는 존재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가 없구나..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구나'라는 생각도 처음 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참 독한 사람이었다. 난 살면서 (5년 전까지는) 엄마가 우시는 걸 딱 두 번 보았는데 첫 번째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였고 (그때 나는 다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그쯤의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 안방에서 나와 놀아주던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갑자기 엉엉 울어서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번째는 내가 영국으로 1년간의 어학연수를 떠나는 날 아침의 엄마였다. 엉엉까진 아니지만 살짝 눈물이 고이신 모습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자식 넷을 키우면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아가시는 날까지 집에서 모시면서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숨죽여 얼마나 많이 우셨을까 싶긴 하지만.. 자식 앞에서는 항상 강한 모습만 보이시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딸이었겠구나.
엄마도 세상에서 가장 엄마 편인 '엄마'를 잃은 가엾은 사람이었구나.



속으로 욕을 했던 언니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무섭게 체력은 떨어졌고, 평생 보고 살 거라 생각했던 친했던 친구들과는 관심사가 너무 달라서인지 무섭도록 연락이 뜸해졌다. 35살을 기점으로 친구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이 잦아졌다. 간혹 치매 판정 소식도 들렸다. 내 나이가 마흔이 되다 보니 벌써 칠순이 훌쩍 넘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불현듯 '부모님이 정말 돌아가시면 어쩌지'란 공포심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그토록 강했던 엄마가 눈물이 많아지셨다. 너무 약해진 엄마 모습에 '엄마도 혹시 치매는 아니겠지?'라는 무서운 생각도 자주 들었다. 마지막 남은 싱글 친구들이 본인들의 소원대로 39살이 되기 전에 모두 시집을 갔을 때는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지라고 불안해하는 친구들에게 "난 요즘 가끔 죽을 때 곁에 아무도 없을까 봐 너무 무서워"라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하며 잘한 선택이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35살에서 40살이 되기까지 5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잔인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친구 어머니의 말은 예언이 되어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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