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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I Jun 08. 2023

금주 15일째

무알코올 맥주에 빠졌던 2주

벌써 금주 2주째라니... 마흔이 되고 나서는 시간에 가속도가 붙어 눈 깜짝하면 시간이 훅 지나있다.


예전에도 라식 수술과 허리디스크 시술 때문에 각각 한 달씩 금주를 했던 적은 있다.

수술 후 딱 4주를 채운 날, 낮부터 술집 앞을 서성이며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이젠 술을 마셔도 되냐고 간호사께 여쭤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 1~2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할 때는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하루 종일 누워있고 하루 12시간 이상을 자는 무기력한 생활이 지속됐기에 스스로가 정말 쓰레기처럼 느껴졌고, 술은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였다. 그때 스스로 정의한 '내가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했던 일'은 '그나마 술은 마시지 않는 일'이었고 그 조악한 뿌듯함으로 생명을 이어갔었다.


요즘같이 충분히 술을 마셔도 되는 상황임에도 (쓰리잡을 뛰면서 그나마 열심히 살고 있기에) 자의적으로 참는 것은 살면서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그런데 웃픈 반전?은 알코올 대신 무알코올 맥주에 빠졌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탄산음료는 절대 마시지 못하게 했던 엄마 때문인지 원래 기도가 약한 탓인지 최근까지도 난 탄산음료를 잘 마시지 못했었다. (40대에 들어선 지금은 기도가 늙었는지 곧잘 마시지만...)

엄마도 엄마지만 같은 동네에 살던 어떤 남매가 유치가 다 썩은 상태로 나왔는데 그 남매를 임신 중이던 그들의 엄마가 임신 내내 콜라를 달고 살아서 그런 거 같다는 소문을 들은 후로는 자발적으로도 탄산음료는 거부했었다. (오죽하면 유치원 소풍 때 김밥에 먹었던 사이다와 중학생 때 KFC에서 치킨과 함께 먹었던 콜라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면 믿겠는가?)


특히 맥주는 배까지 더부룩해져서 몇 모금만 마셔도 계속 기도에 가스가 차고 꺽꺽대기 때문에 가장 싫어했던 주종이었다. 맥주를 1잔이라도 마시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소화를 시키지 못했고, 소주도 두꺼비나 빨간 뚜껑만 고집했던 나였기에 맥주는 도수가 낮은 술이라는 점도 싫어하는 이유에 한몫했던 거 같다.


그러던 내가 몇 년 전 직접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맥주의 맛에 잠시 빠졌던 적이 있다. 365일 중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맥주 기계를 청소하고 맥주잔은 무조건 2번씩 세척, 소독하고 냉동고에서 칠링된 그립감과 입술에 닿는 느낌이 좋은 예쁜 유리잔으로 서빙했다. (맥주잔에 기름이 끼는 것을 방지하고자 맥주잔만 닦는 고무장갑과 수세미가 별도로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은 생맥주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여름에는 하루에 몇 백 개의 잔을 새벽 3시까지 혼자 설거지하기도 했다. 손님 두세 분이 테이블을 몇 십 개의 잔으로 가득 채울 때까지 1인당 최소 3000cc는 기본으로 드시는 손님들도 많았다.


그전에는 맥주 자체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특히 생맥주는 극혐하는 술이었다. 영국에서 살았던 잠깐 동안은 매일 생맥주를 마실 만큼 좋아했지만 (이때도 알코올 도수 7도 이상인 기네스 엑스트라 콜드만 좋아했었다) 한국에서의 생맥주는 소히 말하는 김빠진 오줌 같은 맛이었기에... 내가 직접 생맥주를 팔기 전까지는 생맥주의 매력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을 마치고 식당 문을 닫기 전에 한 잔 따라 마시는 힘든 노동 후의 생맥주는 정말 황홀한 맛이었다. (관리가 잘된 우리집 맥주라서 맛있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러다 식당을 폐업하고 나서는 또 맥주는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게 되고 또 좋아하게 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다 무알코올 맥주 예찬론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중독을 끊어내는 방법은 또 다른 중독으로 넘어가는 일뿐이라는 걸 몸소 느껴봐서 잘 안다. 중독에 취약한 인간으로 타고난 이상 그나마 이에 대한 해결책은 새로운 중독을 좋은 방향의 중독(운동 중독, 책 중독 등)으로 자꾸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것.


이렇게 알코올중독자는 무알코올중독자로 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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