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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I Jul 17. 2023

금주 50일째

그리고 8kg을 감량한 이야기

금주를 시작한 지 오늘로 54일째.


나 같은 알코올의존증 환자에겐 길다면 그 긴 시간을 어찌 버티었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식단 위주의 다이어트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너무 배고파서(실제로 먹는 양은 풍족했지만 나의 식탐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은 아무것도 손댈 수 없었기에) 술 생각은 나지도 않더라.. 라는 슬픈 이야기의 시작.


처음에는 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식단은 터치 안 하시던 트레이너 선생님이 금주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리고 허리 디스크 통증을 핑계로 자꾸 주기적으로 홀딩을 하는 나에게 화가 나신 건지) 한 달 전쯤 갑자기 식단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술, 밀가루, 당.. 이 세 가지는 절대 불가!! 입에 들어간 것 중 칼로리가 존재하는 것은 모조리 사진과 시간으로 보고할 것!!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주말 아침마다 갓 구워서 나온 빵 몇백 개를 포장하는 나에게 밀가루는 절대 입에도 못 대는 고문에 가까운 다이어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빵이라는 음식을 스스로 찾아서 먹을 정도로 많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좋은 빵집 사장님을 만난 덕분에 알바가 끝나면 늘 양손에 빵이 잔뜩 들려있었기에 요 몇 달 동안 평생 먹을 빵보다 더 많이 먹었던 건 사실이다. 빵을 주식으로 먹다 보니 왜 빵에 미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해할 정도로 빵에 중독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다이어트.

허용된 음식은 현미밥, 닭가슴살, 소고기, 채소, 토마토, 계란, 고구마, 프로틴 음료, 약간의 김치와 김 정도.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고 있던 바나나와 사과조차 당이 많다는 이유로 하루 1개 이하로만 허락받았다. 의구심에 검색을 해보니 바나나는 각설탕 4개 반, 사과는 무려 6개 정도라는 무시무시한 사실만 알아버렸다)


거의 똑같은 식단을 지루하지 않게 먹기 위해 오래전부터 모아오던 그릇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집 청소를 할 때마다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고이 모셔둔 그릇들을 바라보며.. 내가 죽을 때 가지고 가지도 못할 저 연약하고 무거운 짐들을 왜 피 같은 돈으로 사들여서 이 생고생을 할까.. 후회도 많이 했었다.

그런 후회를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아끼면 x 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내가 가진 모든 그릇을 한 피스도 남김없이 이번 다이어트를 위해 모두 사용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똑같거나 비슷한 식단이라도 메인 그릇과 반찬 그릇을 이것저것 매칭하고 그릇의 크기에 따라 세팅도 달라지는 등.. 그나마 그런 즐거움으로 한 달을 또 견뎌왔던 거 같다.



다이어트를 나만의 이벤트로 매일 치러내는 재밌는 과정으로 만든 것이다.



그동안은 식단에 집중하느라 술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빨리 식사 시간이 되어서 닭가슴살이라도 뜯어먹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깐) 그럭저럭 다른 음식에 대한 욕구도 폭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 며칠 전부터 다시 스멀스멀 알코올에 대한 욕구와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욕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알코올 맥주가 살며시 식단 사진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것 또한 트레이너님의 압박?으로 어제가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하고만 우울한 상황. 그래서 그동안의 다이어트를 돌아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너무 엄격한 트레이너 선생님과의 마찰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식단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인바디를 측정해 보고는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에 숙연해지고 말았다.



체중은 최소 8kg 남짓, 체지방은 4kg이나 줄은 것이다.

아래 인바디 캡처본에는 82.9kg이라 되어 있지만 식단을 시작한 6월 19일에는 몸무게가 84~85kg까지도 육박한 상태였다.

그런데 6월 28일에는 75kg, 오늘 아침엔 74kg이었다.

(허리 통증으로 웨이트를 꾸준하게 못 했기 때문에 근육량도 같이 빠진 건 슬프지만)




식단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빈곤하게 먹는 식단은 아니다.

적게 먹으면 나중에 요요가 온다고 130g 현미밥도 210g 짜리로 늘리라고 명령하는 게 울 트레이너 선생님의 스타일이다. (굶어서 빼는 건 60년대 스타일이라고 적게 먹으면 오히려 화를 내신다)

하지만 먹는 음식의 종류에 관해서는 정말 엄격하다. 지방이 많은 참치, 연어도 '지금은' 절대 먹을 수 없다. (그래.. 조미김과 김치라도 먹게 해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튼 요즘 술과 밀가루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점점 힘들어지지만... 최종 목표인 30kg 감량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힘내볼 생각이다.



혹시 나처럼 금주가 힘든 분들은
그리고 술과 안주의 오랜 축적으로 비만을 넘어선 분들이라면
금주와 식단을 동시에 시작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나도 처음에는 금주도 힘든데 식단까지 하라고?? 라며 상상만해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을 두려워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오히려 금주와 다이어트,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담백한 식사를 하니 술 생각이 줄어들고, 술을 먹지 못하니 담백한 식사도 유지할 수 있는 의외의 상생 관계라고나 할까.


그럼 다음번 인바디 검사지에는 더 좋은 결과가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지치지 말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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