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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I May 31. 2023

다른 사람의 고통에 위로 받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내는 서바이버

어제부터 '아내는 서바이버'라는 책을 읽고 있다. 알코올의존증에 대해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이다. 섭식장애와 알코올의존증을 오래 앓아온 아내를 옆에서 간병해온 사실적인 묘사의 이야기로 아사히신문사 소속 기자인 남편이 직접 집필했다. 책이 얇아서 벌써 반 이상을 읽었다. 이 책은 너무 처절한 내용들로 가득해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나의 상황과 비교하며 안도하게 되는 것에 큰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보다 더 심각한 사람의 처지를 가엽게 생각하며 위로받기 위해서? 이렇게 심각했던 사람도 나아졌다니 나도 언젠가는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기 위해서? 작가가 이런 책을 쓴 이유는? 결국 점차 나아지는 아내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것이라서? 아니면 내가 지금 브런치에 글을 끄적이는 것처럼 단지 자신의 고백을 통해 마음의 짐을 해소하고 싶어서?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문득 17년 전에 교회에서 운영하던 중증 정신지체 장애 아동들을 돌보는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장애 때문에 전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 난 무종교인이다. 어릴 때는 모태 신앙인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놀라가듯 가곤 했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연극에도 참여하고, 교회 수련회에 따라간 적도 종종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고 품어주신다는 하나님과 내가 아닌 다른 신을 믿는 자는 용서치 않는다는 십계명의 하나님의 사이에서 괴리감과 회의를 느낀 나는 그 후로는 가벼운 마음으로라도 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돌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아프게 태어나서 부모에게 버림받는 이 불쌍한 아이들을 세상에 보내신 걸까?'하고. 그런 의문을 며칠 간의 봉사활동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센터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그 선생님은 "모든 태어난 존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존재 이유가 있고, 이런 아이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며, 이 시간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 등 많은 것들을 깨우칠 수 있다."라고 답변하셨다. 난 그 답변에 솔직히 말하면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들의 존재 이유가 단지 다른 사람들의 성찰을 위한 것이라고?????

그 불쌍한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정신과 사지라도 멀쩡하니 열심히 살아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 걸까?


너무 역겹고 화가 났다. 그 아이들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자체가 죄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저런 생각을 가진 종교인들이 있기에 그나마 이 아이들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닐까.. 라는 마음도 들었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런 마음이 힘들어 그 후로는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옆으로 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때의 역한 감정은 시간이 더 흘러 송혜교가 출연했던 '오늘'이라는 영화와 전도연의 '밀양'으로 연장되었다. 정작 피해자인 나는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 이미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고 뻔뻔하게 말하던 가해자의 모습, 나는 아직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용서해야 한다며 강요하고 내 아이가 죽었는데 하나님의 뜻이니 받아들이라는 종교인들, 그 두 영화에서 보이는 종교에 대한 시선에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아내는 서바이벌'의 작가도 그가 취재하는 힘든 사람들을 보며 위로받는 장면이 있다.



다중 채무, 생활 보호, 의료 난민... 나는 빈곤 문제 취재에 심취했다.
취재원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간의 사회 현실을 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가난은 시대의 필연적 주제이기도 했지만, 나 개인의 필연이기도 했다.
아내의 증상이 악화되면서 마음 둘 곳이 없어졌다. 그러나 취재에 열중하면 잊을 수 있었다. 취재원이 겪는 어려움과 내 어려움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아내도 나도 이 사회에 무수히 존재하는 '힘든 사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어딘지 안심이 됐다.


- 아내는 서바이버, 나가타 도요타카 -



다른 사람의 고통에 위로받는 것이 옳은 것일까?


17년 전 23살의 나도 혼란스러웠지만 40살인 지금의 나도 여전히 같다. 하지만 여러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고 직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아내는 서바이버'의 책 소개 글에서도 단지 개인의 고통을 털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신 의료의 수용주의와 가해성,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 가족 돌봄의 현실 등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짚는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알코올의존증 환자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A.A(Alcoholics Anonymous)에서 많은 힘을 얻고 삶이 나아지는 사례를 보면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작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에 잣대를 들이밀며 저울질을 한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서바이버』는 현직 아사히신문 기자가 정신질환자 아내와 함께한 20년을 기록한 책이다.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이상 행동을 시작한 저자의 아내는 섭식장애, 망상, 해리성 장애, 알코올 의존증, 인지저하증까지 여러 정신질환을 차례로 앓고, 부부의 삶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저자는 아픈 아내를 돌보며 겪은 개인의 고통을 털어놓는 데에서 나아가 정신 의료의 수용주의와 가해성,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 가족 돌봄의 현실 등 ‘정신질환’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짚어본다. 아내의 병으로 인해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 눈을 돌린 저자는 빈곤저널리즘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 디지털판에 연재되는 동안 이례적으로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저자의 글은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22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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