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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I May 23. 2023

금주 5일째

50일은 된 거 같은데....

코스트코에 가서 술을 30~40만 원치 쓸어 담던 내가 50일, 500일 같은 금주 5일째를 보내고 있다.

택시비가 아까워서 (택시가 안 잡히기도 했지만) 그 무거운 술들을 들고 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하던 난, 집에 가서 마실 술에 대한 흥분과 자기혐오적인 양극의 감정에 널뛰기 시작했다.

금주를 시작할지 말지 고민하던 나는 지난번 브런치에 금주에 관한 글을 남겼고, 알코올의존증의 삶을 살았던 과거의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치부를 모두 까발린 글을 남기자마자 또 술을 입에 털기에는 쥐똥만 한 양심이라도 남아있었는지 무사히 6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금주 다이어리'의 저자 클레어 풀리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금주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나도 그녀처럼 블로그 대신 브런치라는 익명의 공간에 나의 추잡하고도 그리운 과거를 털어내고 꼭 금주에 성공하리라 다짐한다. (브런치라는 공간에 무한 감사를!!!!)


나는 이러한 지식을 블로그 독자들과 나눈다. 독자가 있냐고? 어떤 면에서는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다. 이건 무료 테라피나 마찬가지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며 두려움과 희망, 매일매일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전부 토로한다. 그러고 나면 더 가볍고, 명확하고, 결심이 굳어진 기분이 든다. '발행' 버튼을 누르면 나의 말들이 인터넷으로 날아가면서 내 고통도 대부분 가져간다.

- 금주 다이어리, 클레어 풀리 -


그런데 문득 '정작 내가 정의한 금주란 어떤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예 평생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것?

당분간은 가능하겠지만 누구나(?) 다이어트와 요요를 평생 반복하는 것처럼 금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거의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금주를 해봤던 나로서는 아무리 오랜 기간 금주를 했어도 술 한 모금에 모든 게 금방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이미 뼈저리게 경험해 봤다.

술을 마시고 잠드는 게 익숙한 나는 요즘 쉽게 잠들지 못한다. 술 없는 일상에 적응하려는 과정이며, 명헌 현상 중에 하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마시고 6시간을 자는 것과 술을 마시지 않고 3시간을 자는 것의 피로도는 비슷해서 그다지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 아이러니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건가?..)

그래서 잠들지 못하는 어젯밤,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그녀의 조각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그 영화에는 '6년 5개월에 사흘'이나 금주했던 남편이 얼마나 쉽게 다시 알코올에 의존하는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어떻게든 온갖 핑계를 찾아 술을 마시는 나의 얄팍한 우울증과 아이를 잃은 남자의 깊은 슬픔을 감히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술을 한번 기억하는 몸은 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의 유혹이든 평생 견뎌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래서 난 '평생 금주!!!'라는 거창하고도 극단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술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의 목표는 술을 적당히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것.

오차 범위 ±1kg의 평균 몸무게를 평생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두 알 것이다. (오드리 헵번이 죽을 때까지 평생 같은 몸무게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할 정도니깐)

그렇기에 폭음과 금주의 양 극단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것이 술을 적당히 즐기는 것보다는 오히려 훨씬 쉽다는 것을 - 나처럼 알코올의존증 테스트에서 체크가 안된 칸을 찾는 게 더 쉬운 사람들은 - 분명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나는 습관적인 폭음을 버리고 술을 적당히 즐기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나도 "지난 주말에 과음해서 이번 주는 쉬려고"라는 말을 우아하게 내뱉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분별력 덕분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위를 들고 달리는 사람처럼 아주 위태롭게 살았음을, 아차 하는 순간에 넘어져서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찌르지 않은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 금주 다이어리, 클레어 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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