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 관대하기
가만 보면 우리 사회는 효율성을 중요시한다.
어떻게 하면 적은 input으로 많은 output을 낼지 고민하고, 그것을 개인의 삶에도 강요한다.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 말이다.
미라클 모닝, 갓생, 아침형 인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지런히 일해야 성공해야 한다고 한다.
삶이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그것이 마치 삶의 정답인 것처럼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12년간, 정답만을 쫓은 결과이다.
성인이 돼서는 오롯이 나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떻게 하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노력한다.
미디어의 발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정보를 가져다준다.
검색 한 번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또 그것은 우릴 다시 채찍질한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감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불안
평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일 것이라고 자부하며 어깨를 쓰윽 편다.
정말 슬픈 일이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타인의 삶을 들춰볼 수 있는 오늘날에 필요한 것은
'비효율적인 삶'이 아닐까 싶다.
1. 비효율적인 삶이란 무엇일까?
효율적인 삶이란 정해진 시간 내의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비효율적인 삶은 정확히 그 반대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결과를 내는지 신경 쓰지 않는 삶이다.
1.1 결과는 허수이다.
애초에 결괏값을 정하는 데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예를 들면, 1년 안에 1억을 버는 것이 목표라고 하자.
누군가는 달성할 것이고, 누군가는 천만 원도 저축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1억을 번다고 해서 그것이 내 삶의 결괏값일까?
애초에 정했던 가정에서부터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1억을 손에 쥐면, 삶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것인가?
그 이후의 삶은?
그렇다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나의 고생은?
만약, 1년 동안 내가 무리를 해서 1억을 겨우 모았다면, 그 과정에서 잃는 것도 있다.
1억을 얻었지만, 잃는 것은 가령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가?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에 얼마의 가치를 둘 것인가?
그렇다면 나의 결괏값은 결국 1억인가? 아니면 그 이하인가? 아니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
1.2 불안하면 안 된다.
1억을 버는 과정이 즐겁고,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회인은 1억을 1년 안에 모으기 쉽지 않다.
불안은 일을 늘린다.
1억을 벌기 위해, 부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주식에 손을 대고 하루하루 주식 어플만 보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즐기지 못하는 목표라면, 1억을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비효율적인 삶에 가깝다.
2. 남과 비교할 것이라면 그들이 이뤄낸 결괏값이 아닌, 그들의 삶 그 자체를 면밀히 바라보자.
농부의 삶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땡볕아래에 밭일을 장시간 할 것이며, 강렬한 햇빛은 그들의 살을 까맣게 태울 것이다.
농작물이 잘 열매 맺을지 날씨를 매일 확인할 것이고, 수확을 한 이후에도 그다음 해를 준비하느라 바쁠 것이다.
그들의 삶이 본인의 삶보다 낮다고 느끼는가? 낫다고 느끼는가?
그 정답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삶을 판단할 수 없다.
직업은 직업일 뿐, 당신의 삶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또한 직업은 원한다면 몇 번이고 바꿀 수 있다.
당신이 버는 연봉, 이뤄낸 성과, 사회적 지위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타인이 당신의 삶을 판단할 수 없듯, 당신 또한 농부의 삶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각자 열심히 제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응원하는 것이다.
타인은 타인이다.
누구도 당신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당신 또한 타인을 단면만으로 판단하고 비교해선 안된다.
3. 우리 삶에 효율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삶은 서류에 적힌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인과 비교하며 많은 것을 놓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해나가길 바란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당신의 정답란은 당신만 적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