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영향은 미미하다.
나는 곧잘 최악의 사태를 생각한다.
회사에서 누군가와 갈등이 있을 때, 갈등의 끝에 결국 소송당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상상이다.
상상일 뿐이다.
그런데 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고찰해 봤을 때, 자기 방어 기제에 해당한다.
최악의 수를 생각함으로써 실제로 그 상황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비하는 것이다.
어쩌면 생존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시 소송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어지간한 잘못이 아닌 이상 나는 소송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 성격 상, 할 말을 꾹꾹 참는 편이기 때문에 남의 심기를 거스를 일이 적다.
하지만, 상상하는 것이다. 이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면 마음이 괜찮아지는가?
애석하게도 나의 대답은 'No'였다.
결국에 누군가에게 이 답답함을 토로해 지인에게 '과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내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왜 이런 의미 없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궁금할 사람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그런 사고 회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할 만한 대답은 없다.
회사 생활에서 나온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중요도가 높지 않다. 회사에서 잘린다고 하더라도, 소송에 걸려 금전적인 피해를 입더라도, 나를 심연으로 끌어내릴 정도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겁장이가 되어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끝을 달리는 것은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은 가변적이다. 나 또한 그렇다.
따라서, 상상이 들어맞지 않으며, 어느 정도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하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상상하는 것이다.
예시 1. 상대와 내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 부분이 나에게 치명적까진 아니더라도 준-치명적이라고 했을 때에도 관계의 단절을 상상한다.
말을 해서 풀어나가기엔 나도 이미 상대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이미 이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은 상대가 변하지 않을 것을 상정한다.
나 또한 양보할 수 있는 범위가 적기 때문에 그렇다면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덤으로 관계 단절 후의 좋은 점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내가 이런 생각까지 했으며,
마음의 문을 닫았다는 것을 아는가?
대답은 'No'이다.
단절을 말하는 것 또한 새로운 수고이기 때문에 굳이 일을 벌이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서 단절을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겉보기엔 문제없다. 나는 대답도 곧잘 할 것이고, 웃을 것이며, 밥도 같이 먹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의 마음 가짐만 다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후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잔잔한 내 모습과 다르게 속에서는 대하드라마를 적어놓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오롯이 나뿐이다.
아아-
이로써 충분히 지쳤기 때문에 이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기분이 괜찮아져서 단절 철회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은 가변적이며 나 또한 그렇다.
시간이 흐르니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히기도 한다.
아마 마음속에서 이 사람이 특징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필요했다.
나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마음을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다.
그래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또 이런 패턴이 시작된다.
아,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상상은 상상일 뿐, 실제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상대의 대응 및 반응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상이 너무 괴롭다면, 입 밖으로 내뱉어 의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물론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언젠가 가능한 날이 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