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래요.
살면서 회피형이라고 의문을 느끼는 순간 1위는 바로 이 마음이 들 때이다.
'너무 좋은데, 너무 싫어요.'
나는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친구들도 알아서 잘 살고 있을 테고,
회사 사람은 퇴근하면 굳이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인류애가 사라지는 일이 많다.
인간을 알아가는 것보다, 길고양이를 관찰하는 것이 훨씬 무해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과연 그럴까?
이 글은 인간을 싫어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관심을 두지 않기로 회피한 나의 이야기이다.
1. 마음을 쏟는 것이 힘들다.
사실 나는 힘든 사람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지쳐 보이는 것을 꽤나 잘 찾아내고, 누군가의 힘들다는 말을 잘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힘듦을 잘 숨기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괜한 안부를 묻고, 재미난 영상을 보여주고, 자주 연락하자는 말을 한다.
평소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던 나의 말에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지친 모습을 들켜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의 힘든 이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도움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 일이고, 그것이 나의 작은 최선이었기 때문에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2. 마음을 쏟는 것이 힘들다.
나는 좋아하는 책의 마지막을 보기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아껴 듣는 사람이다.
나는 구태여 피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책이 얼마나 남았는지 종이 두께를 확인하며 안심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의 삶을 망칠까 봐 두려운 사람이다.
마지막이 아쉽고, 또,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눈물이 날까 걱정한다.
그럴 때는 시간을 둔다.
나의 격한 감정이 조금 더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기억에 거의 잊힐 때 즈음 다시 책장을 열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다.
3. 결국, 마음을 쏟는 것이 힘든 것이다.
무생물과의 관계라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많아 그나마 낫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다르다.
마음을 쏟음으로써 따라오는 것들이 싫다.
연락을 기다리고, 반응을 궁금해하고, 작은 것에 의미 부여하고, 기대하고 다시 실망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밀이다.
마음을 주고받음에 보이지 않는 예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강제가 아니며, 또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무도 탓할 수 없다.
잘못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일 선물을 준 상대가 반드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
기분이 나쁘다면, 상대에게 기대를 했다는 것이며, 그만큼 그 관계에 마음을 쏟은 것이다.
나와 상대, 그 마음의 총량이 시소처럼 기울어진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든 것이다.
4. 결국, 마음을 쏟지 않는 것이다.
구태여 '싫다'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다.
'싫어해요'라는 말을.
소리 내어 말하면 진짜가 될 것 같아서 말한다.
"인간, 싫다!"
그래서 난 오늘도 웬만한 모든 것에 무던하지만,
인간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 하면 싫어하려 노력한다.
5. 결국, 싫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방법은 좋아지기 시작한 그 순간에 시작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
마음이 작을 때, 실행하는 것이다.
- 단점을 찾는다.
- 인사를 대충 한다.
- 눈을 피한다.
-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 관해 언급하면 아무 말도 안 한다.
- 친해질 수 있는 껀덕지를 최소화한다.
- 어색해한다.
이렇게 하면 상대도 본인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적당한 선에서 다가오지 않는다.
만약 이 방법을 시도해 봤는데, 더 좋아진다면?
그럼 실패다. 좋아해라.
재시도를 원한다면, '짝사랑하는 상대한테 고백받자마자 마음이 식는 전략'을 사용하면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순간, 그때부터 냉정해지는 마음을 갖는 전략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너무 좋은데, 너무 싫어요.'라는 말은
'너무 좋아서, 너무 싫어요.'라는 말이다.
'너무 좋지만, 내 마음을 조절할 수 없어서 두려워요.'라는 말이다.
'너무 좋아요. 하지만 내가 느끼는 기쁨보다 혹시 상처가 생길까 두려워요.'라는 말이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던, 그 앞에는 너무 좋다는 전제가 있다.
언젠가는 무엇을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날이 오면 좋겠다.
당신도 그럴 날이 올 것이다.
나도 그럴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