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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에게 남은 진짜 시간

『나이 60,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홉번째 글

by 멘토K

예순을 지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앞으로 나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라는 질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늘 시간이 무한히 주어질 거라 믿었고, 오늘을 허비해도 내일이 또 있을 거라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하루하루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깎아 쓰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 나의 시간은 늘 회사의 것이었다.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며, 내 삶은 조직의 시계에 맞추어 돌아갔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고, 오히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정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컨설턴트로 독립한 이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마감은 내 시간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안도감보다 허탈함이 남았다.

그렇게 수많은 보고서를 만들어냈지만, 그 보고서들이 나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돈이나 성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흔적이라는 것을..


예순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진짜 내 시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과거보다 짧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이상은 남의 시계에 내 시간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에 시간을 쓰고 싶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서두르지 않는다.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고 브런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늦은 출근길 커피 한잔을 들고 사무실로 향한다.


겉으로 보면 한가해 보이지만, 나에게는 이 시간이 가장 값지다.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나답게 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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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접하면서 또 다른 의미의 시간이 열렸다.

내가 며칠 걸려야 할 일을 몇 분 만에 해내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허무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야 비로소 내 시간을 되찾을 수 있구나.’

내가 그동안 투자했던 수많은 밤과 새벽들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AI가 내 일을 덜어주는 만큼, 나는 그 시간에 배우고, 쓰고, 또 느낄 수 있다.

효율이 만들어준 여백을 내 삶의 진짜 시간으로 채우는 것이다.


나는 이제 성과보다 경험을 남기고 싶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말 한마디, 글 한 줄, 따뜻한 시선 하나. 그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오래 남는다.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의 문제다.


예순의 나에게 남은 진짜 시간은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짧다고 해서 두렵지 않다.

오히려 짧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더 이상은 허비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내게 남은 진짜 시간을 어디에 쓰고 싶은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욕심을 버린다.

더 크게, 더 멀리보다는 지금 여기서 나답게. 그동안의 경험을 책과 글로 남기고, 책을 읽고, 낯선 것을 배우고 일, 여행으로 새로움을 만드는 여정.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남은 진짜 시간을 빛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의 10년, 20년을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줄어들지만,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삶의 밀도는 오히려 더 짙어질 수 있다.


그 시간이 짧아도 괜찮다.

그 안에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시간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시간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남은 시간은 더 이상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오직 나의 것이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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