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나 Feb 21. 2023

최선은 사양할게요

필사즉생(筆寫則生)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나가기 전 한 말이다. 어떻게 12척의 배로 133척을 상대하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을까.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란 뜻을 가진 저 여덟 단어 속에 이순신 장군의 결의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기기 힘들어 보이는 전쟁 앞에서 생과 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당시 상황을 보면, 할 수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해서 했다는 해석이 더 맞다. 133척이 죽고 12척이 살 수 있었던 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선뜻 맞서지 못하는 부하들에게 이순신 장군이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무엇이든 직면해야 맞설 힘이 생긴다.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내가 살고 있는 하루도 작은 명량해전의 연속이었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울돌목의 물결이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나의 인생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오늘 내 앞에 주어진 하루를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잘 보낼 수 있으려면 열심히 노를 저어야 했다.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은 나의 가장 근본적인 적이었고 열심히 사는 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직면해야 했다. 할 수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해서 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조용히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출근 준비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칼의 노래>를 필사했다. 한참 명량해전이 진행 중이다. 전쟁은 점점 깊어지고 나는 이순신 장군 뒤에 앉아 전쟁을 느꼈다. 이길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 그런지 두렵진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패할 전쟁은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23전 23승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고작 12척의 배를 가지고 어떻게 이길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몇 달째 보고 있는 장군이 가까운 듯 멀게만 느껴진다. 필사를 하며 이순신 장군에게 나의 삶도 이길 싸움인지를 묻고 싶었으나 어이없는 내 질문에 칼의 노래가 내 쪽으로 올 것만 같아 그만두었다.


나는 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을까. 오늘 아침도 나는 왜 열심히 살고 있을까. 이유를 알 수 없어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 가끔은 허무하다. 틀린 길 같지는 않아서 그 틀 밖에서 내 삶을 바라보기가 더 힘들다. 혹시 내가 최선을 다해 사는 이유가 삶의 두려움과 직면하지 않기 위함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으니 두려움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핑계, 뭐든 노력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두려움이 없어질 거라는 막연한 생각. 이런 것들을 내 안에 채우고 가짜로 당당하게 내가 나를 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친구가 내게 필사즉생(筆寫則生) - 필사를 하는 마음이 곧 인생 - 이란 말을 주었다. 필사와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언어유희였다. 혼자서 4글자를 곱씹어보았다. 내가 필사를 하는 이유는 여유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연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삶에서 살짝 벗어나 혼자만의 유희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잘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모든 것에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어 필사를 한다. 필사하듯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최선을 다해 살고 싶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칼끝이 내게로 와 뒤로 물러설 곳이 없음을 말해 준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전쟁의 시간이 아니지 않냐고 말할 용기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힘을 빼고 여유를 가지고 싶은 의미라는 것을 좀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이 전쟁터보다는 좀 더 평화로운 곳이길 바란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던가. 내 인생이 전쟁과 같이 느껴졌던 건 내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이제는 꼭 맞서야 할 곳이 아니라면 맞서기보다는 함께 가는 길을 걷고 싶다. 잠시 쉬어도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을 때는 또 열심히 하는 그런 삶을 원한다. 내 삶의 리더는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나다. 장군을 좋아하지만 장군이 나는 아니다. 나답지 않은 최선과 나답지 않은 열심히와는 이제 헤어지고 싶다. 잘 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전 03화 필사는 왜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