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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r 18. 2024

 그래도 하고 싶다면

김창옥 TV

부부는 한눈에 봐도 선해 보였다. 남편은 전통 국악에 진심이었고 부인은 무대에 선 그를 응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남편이 전공을 살려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부인은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국악을 잘 듣지 않는 요즘 사람들을 탓하는 것으로 끝날 일도 아니었다. 둘이서 해결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을 안고 부부는 고민 상담을 해주는 김창옥 쇼에 왔다. 부인은 사연을 적으며 남편에게 노래를 할 무대를 제공해 주길 요청했다. 남편의 무대보다 부인이 남편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무대를 끝낸 남편에게 한마디 하라는 김창옥 강사의 말에 아무 말 못하고 울기만 하던 부인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김창옥 강사님의 강의 영상을 보다가 알게 된 사연이다. 부인은 남편의 무대를 보고 객관적인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도 남편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보았다. 진심을 담아 목소리를 내는 그의 무대는 간절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나는 열심히 감동을 받으려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무대를 끝내고 강사님의 반응을 기다리는 남편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국악에 대해 무지해서 좋은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길 바랐다. 남편의 눈길을 따라 나도 강사님을 살폈다. 속을 잘 알 수 없는 표정이 보였다.  


잠시 생각을 하신 후 강사님는 조심스럽게 무대에 있는 남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은 성악을 전공했는데 그만두었다는 농담을 던졌다. 장난스러운 그의 말투에 모두가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웃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강의를 할 때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는데 예전에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는 너무 잘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잘한다'라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남이 좋아하는 것이 일치할 때를 의미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남에게 국악을 들으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남편의 실력보다는 외부의 조건이 더 문제였다. 남편은 노래를 잘했지만 호응은 크지 않았다. 방청객도 나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이것이 현재 남편의 무대에 대한 대중의 답이었다.


남편의 무대를 보며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생각했다. 자유학교는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유학년제 학교다. 1년 동안 학생들은 제대로 나이를 먹는 법을 배운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경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학교는 돈이 되지 않는 영역에 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자신이 누구인지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돈이 되는 영역이다. 그래서 학교를 홍보할 때가 되면 늘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이로 속앓이를 다. 남편이 가진 국악 실력보다는 대중의 취향이 중요하듯 필요한 교육과정이지만 학교의 본질보다는 외부의 조건이 더 중요했다. 방청객의 반응을 보는 남편의 표정 속에는 막막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외로움이 뒤섞여 있었다. 내게도 익숙한 표정이었다.


강사님은 그래도 좋아하는 일, 돈이 되지 않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은 아니라 했다. 그리고 이를 가지고 평생을 사는 것만큼 행복한 인생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인생의 핵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 돈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란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연에 나온 부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매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며 산다. 무엇을 우선으로 두어야 할지를 고민하며 각자 다른 선택을 하고 그것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묻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에 질문과도 같았다. 동시에 그러기 위해  스스로 현재의 삶을 책임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거기도 했다. 현실과 꿈,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둘 사이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학교 홍보를 하며 내 마음 같지 않은 현실 앞에서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후 당장의 성과를 바라진 말자고 마음먹었다. 누가 뭐라 해도 17살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가 맞다. 그래서 자유학교의 교육과정은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라 확신한다. 운 좋게 그때를 내가 교사로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설사 시간이 더 많이 걸려 보지 못한다고 해도 선례를 남기는 것만으로 노력할 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나름 자부심이 생겼다. 나는 출근할 때마다 교사로서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산다. 작고 힘없는 학교라 힘들고 서러울 때가 많긴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이라 감사하게 생각한다. 속에서 과한 욕심이 올라오면 이것만으로도 됐다고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는다. 조금씩 오래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변화이기 때문이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때를 기다린다. 언젠가는 꼭 그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연 속 남편도 국악을 계속하면 좋겠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악에는 한국의 기본이 들어 있다. 기본은 대중성과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계승되어야 한다.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국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다면 다소 힘들겠지만 그 인생은 좀 더 가치 있지 않을까. 나도 자유학교의 가치를 잊지 않고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 융통성 없는 생각일 수는 있겠지만 교육의 기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이라 믿는다. 내가 사람답게 살려면 자신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다. 자유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다소 현실감 떨어져 보이더라도 기본은 지켜내고 싶.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매번 는 선택이 부디 나다울 수 있길 바란다. 


대문 사진 출처 : 유튜브 '김창옥 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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