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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r 13. 2024

때 빼고 광내고

토요일 아침, 내 소오중한 주말이다. 아직 새 학기 첫 주 긴장감이 남아 출근할 시간에 눈이 떠졌다. 나도 모르게 순간 허공에 대고 사회적 웃음을 지었다. 아니야, 가면 잘못 썼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야 얼굴에서 표정을 거뒀다. 침대 안에서 좀 더 있으려다 그래도 아까운 주말을 그냥 흘러버릴 순 없어 애써 흐물거리는 몸을 주워 담았다. 차를 세차장에 맡기고 나도 온천을 하러 갔다. 뜨거운 물이 갑갑하지 않고 시원했다. 내 몸 위에 제법 먼지가 쌓였던 모양이다. 물속에 있으니 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습관처럼 잡생각이 올라왔다. 어떻게 버린 무게인데 벌써 먼지를 쌓을 순 없지.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잡생각 퇴치용으로 더 뜨거운 물을 틀었다. 조용하고 따뜻한 물속에 시원한 봄바람이 부는 듯했다.     


때 빼고 광내니 몸이 저절로 사뿐거렸다. 내 차도 깨끗해졌겠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세차장을 기웃거렸지만 이상하게 차가 없었다. 빨리 차를 빼라는 아저씨의 눈빛에 나는 더 허둥지둥거렸다. 아직도 주중과 주말 사이에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금방 차를 가지고 나가겠다는 의미로 아저씨께 헤어질 인사를 세 번이나 하며 제일 뒤쪽에 있나 싶어 고개를 내밀었다. 너 지금 어디 보니? 아저씨는 하시던 일을 멈추고 바로 내 앞에 있는 차와 나를 번갈아 보셨다. 난감하게도 코앞에서 내 차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원래 얘가 이렇게 번쩍거렸었나. 6년을 타던 찬데 차를 못 찾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 설명도 불가능했다. 일단 아저씨께 진짜 나간다는 의미로 마지막 네 번째 인사를 드리고 세차장을 나왔다.     


인근에 잠시 주차를 하고 천천히 차를 둘러보았다. 바퀴가 제일 낯설었다. 당연히 누런 듯한 금색인 줄 알았는데 번쩍이는 은색이었다. 매일 함께 있다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구나. 되레 매일 함께여서 더 보지 못하는 게 있겠다 싶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버리지 못했던 일상의 찌꺼기를 나 대신 차가 짊어지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미안함에는 관심 없다는 듯 목욕한 차는 봄 햇살에 유난히 반짝였다. 주변에 다른 차들의 바퀴를 둘러보았다. 내 차만큼 깨끗한 것도 없었지만 누런빛이 도는 차바퀴도 없었다. 이제는 이렇게 극과 극으로 차를 대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래간만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 차가 제일 깨끗한 날이 맞았다. 문득 차 위에 내려앉고 있을 먼지가 신경 쓰였다. 염병할. 만약 차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나에게 웃으며 욕 한 바가지는 했을 것이다. 공기 중 먼지가 신경 쓰일 정도인데 그간 어떻게 그렇게 참았냐고 묻지 않았을까. 그래도 나는 오늘만큼은 유난을 떨고 싶었다. 인근에 있는 전통시장에 장이 선 날이라 차와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았다. 한 톨의 먼지라도 덜 묻길 바라며 많은 장애물을 피해 무사히 집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제일 구석진 곳에 주차하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됐다.


매일 목욕을 하며 살 순 없을까. 무겁게 사는 게 싫어 괜히 욕조 하나 없는 집에 대고 툴툴거려 본다. 좋은 거 한번 맛보고 나니 계속 먹으며 살고 싶은 욕심이 드나 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목욕이 좋을 수 있는 건 어느 정도의 때가 몸에 붙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내 몸의 때는 내가 학교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다. 열심히 살고 또 열심히 털어내며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지는 게 인생이라 생각한다. 매일 목욕은 못하더라도 목욕할 때마다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 간격이 너무 극과 극으로 뚝 떨어지지만 않도록 신경 쓰면서 말이다. 내 일상이 무거움과 가벼움이 잘 섞여 조화로울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은 차도 나도 모두 깔끔한 날이었다. 가벼운 몸과 마음을 느끼면 느낄수록 내 몸 챙길 줄만 알았지 차 돌볼 생각을 안 하고 산 것이 두고두고 미안하다. 차는 분명 물건인데 가끔은 친구 같다. 개학 첫 주 피로를 나 혼자 풀지 않고 차와 함께해서 두 배로 좋다. 늘 함께한다고 소홀히 대하지 말고 관심 가지고 살아야겠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 곧 나인 것 같다. 물건의 가격이나 브랜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얼마나 쓰임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얼마나 적절하게 보관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내 물건이 항상 정갈하면 좋겠다. 가벼우면 가벼운 대로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그 나름의 단아함이 있는 물건을 쓰며 살고 싶다. 그러면 오늘처럼 때 빼고 광내는 날이 좀 더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대문 그림 출처 : pixabay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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