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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r 06. 2024

와이파이존 죽순이

프롤로그 : 1일 1버릴리스트

작년 5월, 나는 온몸을 둘러싼 무기력에 어찌할 바를 몰라 점점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후 스마트폰 앞에서 멍하게 앉아 몇 시간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편안함과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왕 폰을 볼 거면 마음 놓고 보든가, 폰이 불편하면 보지를 말든가. 둘 중 하나만 하지 욕심은 많아서 여러 가지 감정을 양손 가득 들고 감당도 못 하는 내가 한심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 모든 게 내 탓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똑같은 자세로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3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다시 토끼 눈으로 출근을 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쑤셨다. 어젯밤 내가 본 수많은 영상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잠을 자지도 않고 폰을 봤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공허했던 시간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숨이 정말로 넘어갈 듯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통신사에 전화해 데이터를 끊었다. 굳은 결심이 서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죽고 싶지 않아 치는 발버둥이었다. 


데이터를 끊고, 한동안 내가 내는 소리 외엔 아무 파동이 없는 집에서 또다시 멍하게 지냈다. 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지루했다. 나는 어떤 소리를 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바닥에 누워 양팔과 다리를 아래위로 움직여 보았다. 바닥에 있는 먼지가 덩달아 오르락내리락했다. 내 헛짓거리 사이로 창밖 하늘이 보였다. 언제 내가 하늘을 보았던가. 다행히 5월의 파란 하늘은 예뻤다. 그러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면 와이파이가 있는 곳을 찾아 멍청해진 폰을 다시 스마트하게 만들어 눌러댔다. 이곳이 천국이었던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죽을 것 같아 데이터를 끊었는데 살 만하니까 나는 다시 폰을 찾았다. 누가 더 멍청한지 분간할 수 없었다. 철없는 내 모습을 내가 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데이터를 끊고 4계절이 지났다. 아무래도 철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바뀌지만 내 안의 철딱서니는 1년 만에 바뀌긴 힘든 모양이다. 현재 나의 모습이 완벽한 와이파이존 죽순이인 것을 보면 말이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폰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예전보다는 폰 사용이 줄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만 하는 걸까. 죽이고 싶지 않았던 내 삶은 죽진 않았으나 폰 앞에서 여전히 불안하다. 분명 아무도 내게 폰 사용에 대해 강요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스스로 데이터를 끊었고 또 스스로 와이파이존을 찾았다. 좀 더 잘 살기 위해 애를 쓰고는 있으나 그것이 다였다. 몇 시간 전에도 나는 와이파이를 좀 더 잘 잡기 위해 노트북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댔다. 뚝심 있게 결심을 지켜가는 머릿속 내 모습과는 달리 현실은 지질하기 그지없었다. 


며칠 전, 폰을 좀 더 보고 싶어 하는 어린 조카가 내게 물었다. "왜 폰을 오래 보면 안 돼요?" 나는 약간 과장되게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표정이 웃겨 웃는 조카에게 폰을 계속 보면 얼굴이 이렇게 된다고 했다. 폰을 볼 때는 손발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몸도 마음도 묶여서 그렇다고 했다. 내 어설픈 답은 호기심 많은 조카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못하는 일을 조카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폰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질문이다. 조카의 질문에 다시 대답할 기회가 생겼을 때 좀 더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요즘은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을 읽는 중이다. 책 첫 부분에는 나와 비슷하게 데이터를 끊고 온라인과 떨어지려고 애쓰는 작가가 나온다. 그의 시작이 나와 비슷해 에필로그가 벌써 궁금했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작가는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책 제목이 '부족한' 집중력이 아니라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것도 그의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뒤에 나오는 내용이 어떻든 상관없이 나는 우선 고마웠다. 나의 지질함이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해서였다.


법정 스님은 매일 하나씩 버리며 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나는 머리는 스님을 좇아가고 몸은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 둘이 따로 노니 힘들 수밖에. 무거운 몸과 마음이 와이파이존에서 방치되어 있는 듯하다. 마냥 무거운 것보다는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때 나오는 게 더 예쁘지 않을까. S라인을 꿈꾸며 매일 하나씩 털어내려면 아마 남은 내 삶을 다 써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비워 보자. 흐르는 시간만큼 개운은 할 테니 말이다.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느낌을 닮고 싶다. 맑고 향기로운 조카의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워내는 게 스님의 다이어트 비법이라면 나도 그 길로 가 보련다. 오늘은 와이파이존 죽순이 명찰부터 반납해야겠다. 제발 자체 재발급 따윈 더는 없길 바란다.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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