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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Apr 12. 2024

잘 살고 있다는 증거

자전거 위의 세상

"오늘 뭐 했어?"

"오전에 날씨가 좋아서 밖에서 자전거 탔어."

"힘들지 않았어? 자전거도 잘 못 타면서."

"몇 바퀴 돌리다가 사람 오면 겁먹고 멈추고 했지."  

"ㅋㅋ 잘했다. 재미있게 잘 사네. 니 걱정은 하나도 안 된다."


토요일 저녁, 엄마와 통화를 했다. 오전에 자전거 탔다는 얘기를 하자 내 자전거 실력을 아는 엄마는 까르르 웃으셨다. 나도 따라 웃으며 그래도 40분은 탔다며 허세를 부렸다. 용건이 없는 게 용건이므로 우리는 그렇게 한참 실없는 농담을 했다. 전화를 끊은 후 엄마의 '걱정이 안 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듯해 피식 웃었다. 어이없어 보이지만 잘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굳이 빌려, 낑낑거리며 타고, 혼자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본래 나였다. 엄마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딸을 이해 못 할 리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딸을 보며 바쁜 일상 중에도 잠시나마 하고 싶은 것에 시간을 내는 모습에 안심이 되지 않았을까.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은 '나답다'이다. 엄마가 내 걱정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자전거 이야기에서 내 아름다움을 보셨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던 어릴 적 내가 아직 자전거 위에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이를 먹은 딸의 모습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그 아이를 반갑게 웃으며 안아주셨다. 엄마의 안심은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24시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기에 가끔씩 주어지는 이런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비록 오늘은 균형을 잡기 위해 다리보다 팔과 어깨에 힘을 더 줘야 했지만 지나가는 자전거를 보며 나도 연습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보았다. 자전거 위에서 나는 꽤 자유로웠고 그 시간이 고스란히 엄마에게 전달되었다. 


평소 차를 타고 지나가던 길이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자전거로 이동하니 낯설었다. 길의 미세한 굴곡을 자전거 위에서 고스란히 느꼈다. 멀리서는 그저 일자 모양으로 쭉 뻗은 길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공간마다 제각각의 높이가 있었다. 자전거 초보자에게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자전거는 내 심리를 용케 알아챘다. 멀리서 사람이 보이기만 해도 좌우로 흔들렸고 길이 좁아지면 양쪽에서 압박감을 느꼈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도 한눈에 나의 불안을 알아차리는 듯했다. 내가 근처에 가면 몸을 살짝 피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뒷모습이라도 좀 더 자신감 있게 보이도록 페달을 밟고 싶었지만 아직은 꿈같은 생각이었다.  


40분 자전거를 타고 들어와 2시간 어깨와 팔을 두드리며 누워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나면 원래 어깨와 팔이 아픈 건가. 물구나무 자세로 자전거를 탄 것도 아닌데 상반신의 당김이 하반신의 고요함과 대비되어 더 크게 느껴졌다. 자전거 실력은 허접했지만 몸은 이를 운동한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집에 돌아오니 평소보다 입맛이 더 당겼다. 자전거 위의 낯선 세상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성취감만큼 밥을 펐다. 그리고 눈치도 예의도 다 벗어버리고 나답게 밥을 먹었다. 그때의 내 민낯은 분명 우적거리는 소리와는 별개로 아름다웠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게 내 목표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거의 평지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자전거로 이동을 많이 한다. 틈틈이 연습해서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 거리를 신나게 달렸으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며 길 위에서 나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월요일 출근길에 보게 될 그 길은 예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차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걸어도 보며 길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길은 자세히 보면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오늘, 길은 길답게 나는 나답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났다. 서로의 나다움이 오늘 내 하루를 꽉 채우며 의미를 만들어냈다. 다음에도 그런 시간이 또 있으면 좋겠다. 길이 아름답다는 건 그 위에 선 나도 그렇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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