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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Apr 08. 2024

신발끈 묶는 법은 누가 가르쳐야 할까

몇 년 전 이 무렵이었다. 여행 중 나는 앞서 걷던 학생의 신발끈이 풀려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친구와 이야기하기 바빠 아직 신발 상태를 알지 못한 듯했다. 넘어지면 다칠 수 있는 부분이라 학생을 잠시 세웠다. 신발끈이 풀렸다고 말해주자 학생은 알고 있다고 했다. 알면서도 그냥 걷는 건 허리를 구부리기 귀찮아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나는 웃으며 위험할 수 있으니 다 같이 기다려줄 테니 묶으라고 했다. 그때 학생은 나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신발끈을 못 묶는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나는 "나도 못 묶는데?" 하며 웃으며 악수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학생만큼 당황한 나는 그제야 끈이 풀린 줄 알면서도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파악되었다. 


다들 함께 걷는 중이라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 신발끈을 묶어주고 걷기를 계속했다. 학생은 편해진 발 덕분에 좀 더 가볍게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숙소에 가서 신발끈 묶는 법을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신발끈을 못 묶는다는 사실을 상상한 적이 없어 한동안 당황스러운 표정이 내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숟가락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무의식에 가까운 생활 습관이었다. 누구한테 어떻게 배웠는지도 모를 부분이지만 분명한 건 중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이라는 사실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학생과 신발장에 나란히 앉아 신발끈을 몇 번이고 묶고 풀었다. 어설프긴 했지만 방법은 아니 위급 시에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 듯했다. 


그 후로도 여행 내내 틈틈이 함께 신발끈 묶고 풀기를 반복했다. 며칠 후 우리는 함께 노력한 성과물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걸 다 해본다 싶었지만 재미있었으므로 여행 후 피로와 함께 그 기억도 풀어 넘겼다. 하지만 다음 해가 되고 나는 또 다른 학생과 함께 신발장에 앉아 있게 됐다.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학생이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바로 알아챘다. 한 번 해본 경험이 있어 신발끈 묶는 법은 쉽게 가르쳐줄 수 있었다. 나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키도 180이 넘는 학생이 날 보고 아기처럼 웃었다. 나도 함께 웃긴 했지만 허한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다시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왔다. 올해도 나는 학생들과 여행을 가야 한다. 나는 지난 6년간 경험을 참고로 하여 올해 교육과정에 시간, 청소, 인사에 대해 다루는 수업을 넣기로 했다. 이런 건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하는 교육이니 고등학교에서 할 주제는 아니라고 누군가 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들이 스스로 일상을 꾸려나가는 경험을 거의 하지 않고 학교에 들어온다. 며칠 전 면접을 본 학생은 작년까지 엄마가 머리를 감겨줬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표현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이 교사들의 마음속에 퍼졌다. 아직도 난감함을 느낄 일이 남아 있었구나 싶어 허탈하기도 했다.


고1이면 17살이다. 3년이 지나면 성인이 되는 시기로 대부분 사춘기도 끝난 후다. 뭐가 문제였을까. 알 수 없는 그들의 지난 16년을 상상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그리고 이해하려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속에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한 사람이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건 뭘까. 내가 찾은 답은 시간, 청소, 인사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이 주제가 고1학생들에게 적합한 주제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지난 6년간 보았던 학생들의 생활 습관을 떠올렸다. 미안하지만 충분히 다뤄도 될 만한 주제였다. 교사 회의를 거쳐 철학 시간에 왜 우리는 시간을 지켜야 하는지, 왜 청소를 해야 하는지, 왜 인사를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번 주부터 그 시간이 시작된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자유학교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생활 습관을 관찰할 기회가 많다. 그만큼 교사가 참고 넘겨야 할지 표현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순간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시간이 고통스럽다. 한 번 굳어진 내 생활 습관도 고치기 힘든데 남의 습관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교사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저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말을 해주고 먼저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정말로 고등학교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걸까. 해야 한다고 판단해서 수업을 하긴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17살을 17살로 대하며 학교에서 생활하기를 꿈꾸는 고등학교 교사의 마음이 정말로 욕심인 걸까.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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