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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Apr 15. 2024

교사는 감정노동자다

사는 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정말 그렇다. 최근에는 예기치 못한 일이 학교에서 계속 일어났다. 2월부터 미리 짜놓은 교육과정은 4월이 된 지금까지 상황에 맞추어 계속 수정해서 진행 중이다. 계획대로 되는 게 없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더 촘촘히 계획을 다시 짜게 된다. 덕분에 교사 회의는 거의 매일 열린다. 교사 4명이 전부인 학교라 해결하기 힘든 일이 계속될수록 함께하려는 힘이 강해진다. 서로에게 기댈 수 있어 그나마 숨 쉴 공간이 생긴다. 학교가 안정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오래 걸리더라도 올해 안에 그런 날이 오긴 할까. 계획대로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믿을 게 계획밖에 없어 교사들은 매일 생겨나는 일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며 계획에 대한 계획을 짠다.


지난주 환경 수업 시간이었다. 지난 2달간 고민하며 만들었던 수업은 그 동안의 시간이 무색하게 홀로 산으로 가고 있었다. 학생은 6명뿐이지만 모두 각자였다. 6갈래로 흩어져 수업 시간을 보냈다.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아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 수업에 관심이 없어 아예 시작 전부터 자는 학생, 며칠 결석 후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며 대답도 하지 않는 학생, 머리 아프다고 쉼터에 간 학생까지 나는 각자의 이유로 교실에 모이지 않는 학생들을 수업 시작 전부터 바라봐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은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학생의 모습을 보니 나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다잡고 계획대로 수업을 시작했다. 

한살림에서 진행하는 '옷되살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옷을 모은 다음 진행한 수업이었다. 환경 수업은 이론 대신 함께 경험해서 스스로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옷을 모으고 포스터를 만들어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이 앞 수업 시간에 진행됐었다. 나는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해 꽤 많이 모인 옷을 보여주며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수업의 목표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무슨 일을 하든 함께 힘을 모으면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진 텅빈 교실에서 내 말에 힘이 실릴 리가 없었다.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별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수업을 통해 별에게 연대의 힘은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토요일 오후, 나는 모은 옷을 들고 한살림으로 갔다. 동료 교사들과 인근 학교 교사들의 참여로 제법 많은 옷을 기부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옷을 들고 매장에 들어가니 일하는 분들이 반겨주셨다. 나는 옷을 잘 전달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어정쩡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학교 수업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학생들은 거의 참여를 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수업이 흘러가지 않아 속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요즘 일을 하며 스스로 연대의 힘을 느끼는 중이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내가 전달한 옷은 분명 혼자 모았을 때의 양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계획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수업을 잘 들어주었던 별에게 함께 하는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수업은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더 남은 환경 수업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차라리 내 계획에 대한 어설픔을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건 내 능력의 문제이고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날 학생들의 상태를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업 전까지 나는 무엇을 고민하며 보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뿔뿔이 흩어진 학생들을 하나의 장소로 모을 수 있을까. 계획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력했다.


교사는 감정노동자가 맞다. 가끔은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제대로 된 문제를 고민하며 살고 싶다. 내 능력을 벗어난 문제는 내 것이 아니라고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저 무심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도 적용이 되는 답일까. 신경 쓸 이유를 느끼지 못하지만 신경을 써야 하는 지금 상황이 답답하다. 나는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 중이다.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잘 견딜 수 있길 바란다. 삶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부디 재미없는 오늘에도 존재의 이유가 있길.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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