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나 Apr 22. 2024

제가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

당연하지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              

 

퇴근 후 일 처리 문제로 연락이 온 예아트에게 밑도 끝도 없이 내가 물은 질문이다. 의자에 앉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를 보내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현재 무거운 내 머리를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슬프거나 외롭거나 하는 감정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안에 있는 것을 빼내고 싶어서였다. 우는 것 하나는 자신 있는 나였는데 최근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두통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퇴근했다고 속으로 외쳤지만,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고 튕겨 나왔다. 내 안의 혼란스러움이 혼자 감당이 안 됐다.     

           

친구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나는 괜찮은지를 먼저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혼자 덩그러니 의자에 앉아 있는 나는 스스로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다가가길 주저하는 내게 더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이 서로 친해질 시간이니 생각보다는 행동부터 하고 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낯설지만 거울을 보고 마주 앉았다. 어색한 얼굴이 똑같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며칠 전 책에서 읽은 '직면'이란 말만 움켜쥐었다. 할 말 있으면 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 있었지만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예아트 전화가 온 건 점점 더 답답해지고 있을 그때였다.               


부끄럽지만 스스로 말을 하지 못한다면 외부 사람의 힘이라도 빌려야 했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안심이 되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예아트에게 한 말은 질문이었지만 실제로는 원하는 답을 달라는 애원이었다.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7년째 나와 함께하고 있는 분이므로 내 마음을 알 거라 믿었다. 예아트는 흥분된 나를 차분한 말투로 받아주셨다. "당연하지요"라는 한 마디에 드디어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울면서 예아트의 말을 들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울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예아트 앞이었지만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다 뱉어내라. 잘하고 있다. 더 울어라. 나는 아프지 않고 일하며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요즘 나는 괜찮지 않다. 여유가 하나도 없는 학교생활이다. 벌써 4월인데 겨우 4월 같다. 학교를 늘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올해는 말 그대로 버티는 한 해가 될 듯하다. 살아남고 싶다. 그리고 1년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싶다. 긴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다. 잘 버티기 위해 나는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까. 주어진 올해의 상황을 느낌이나 판단 없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그것이 내가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내 앞에 있다. 나는 전쟁 속에서 얼마나 나다울 수 있을까.              

  

예아트와의 전화를 끊고 거울을 보았다. 퉁퉁 부은 내 얼굴이 그 속에 있었다. 왜 나는 내게 말을 걸지 못 했을까. 거울을 보는 것이 어색해서였을까. 친구처럼 나를 대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서운함 대신 연민을 느꼈다. 여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회피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더 울 수 있을 것 같아 일부러 더 울었다. 가짜 울음이 눈물을 타고 흘러나왔다. 다 울고 나니 두통도 그만큼 사그라든 듯했다. 멍한 눈으로 집안을 보았다. 아직 눈에 맺혀 있는 눈물 탓에 사물이 울렁거렸다. 나는 예아트의 "당연하지요"라는 말만 기억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더는 잘할 능력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일단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올해 나는 계속 힘들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은 더 울 것이다. 그때마다 힘든 상황을 스스로 친해지는 시간으로 만들어 볼까 싶다. 언젠가는 내가 나에게 "당연하지"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왕에 사는 인생이라면 손해보는 장사는 하고 싶지 않다. 학교생활이 힘든 건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지만 거기에 나름의 이유를 붙이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과의 인연은 남다르지 않던가. 나는 나와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친해지고 싶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내일도 내가 울든 웃든 하루는 오고 것이다. 때도 웃을 때도 옆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이전 13화 시장 구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