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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닭아, 보고 싶다

by 마나

“거기가 도대체 어디예요? 학교가 여긴 없는데요.”

“거기 아니에요. 잠시만요. 저희 쪽에서는 학교 주소를 제대로 입력한 거로 나오는데요.”

“아놔... 기다리세요. 다시 돌아갈게요.”


“배달하시는 분이 다른 곳으로 가셨어요. 어떻게 된 거죠? 주소를 잘못 입력한 건 아닌데요.”

“시스템에 오류가 있은 모양이에요. 식어서 먹기 불편하시면 다시 튀겨 드릴게요.”

“아니, 이미 벌써 늦은걸요.”


“학생들이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잘못한 거 아닌데요. 제가 받은 주소에는 분명 여기라고 적혀 있다고요.”

“네, 일단 매장이랑 연락을 해보셔야 할 듯해요. 거기서는 시스템 오류라고 말씀하시네요.”

“휴….”



현장체험학습으로 5시간 산행을 한 직후였다. 종일 고생한 학생들의 다리는 성취감과 피로감이 뒤섞여 후들거렸다. 지금 그들을 위로하기에 치킨만 한 건 없었다. 학생들도 고생한 만큼 통닭에 대한 열망은 여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배달앱을 보니 처음 계획했을 때보다 시간이 늦어질 듯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말에 학생들은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하며 웃어주었다. 그런데 도착하기로 예정된 시간에 통닭 대신 배달하시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학교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계신 곳을 물으니 학교에서 차로 30분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차로 30분! 팽팽한 긴장감이 속에서 올라왔다. 학생들의 피로가 화로 바뀌는 게 눈앞에 그려졌다.


다시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배달원의 짜증 섞인 목소리와 매장 주인의 다시 튀겨준다는 공허한 말보다 학생들의 피곤한 얼굴을 마주 보고 추가된 30분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통닭이 오기로 약속된 시간은 지났기 때문에 교실에 들어가야 했다. 조심스럽게 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30분을 더 기다릴 수 있는지 물었다. 순간 조용한 교실이 더 조용해졌다. 그리고 대답에 힘은 없었지만 다행히 학생들은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미안했지만 더는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없어 조용히 교실을 나왔다.


분 단위로 시계를 봤다. 30분이 300분 같았다. 교실에서는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본래 하교 시간보다 일찍 보내주려고 했는데 통닭이 오는 시간이 하교 시간이 될 것이었다. 괜히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주문했던 동료 교사는 죄인 아닌 죄인 같은 느낌을 받으신 듯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부탁드린 거라 나도 덩달아 미안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기다리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부디 통닭이 아직 따뜻하길 바랄 뿐이었다.


30분 뒤 얼굴이 상기된 배달원이 통닭 두 마리를 들고 오셨다. 그리고 나에게 휴대전화에 찍힌 주소지를 보여주셨다. 생전 처음 보는 주소 밑에 우리 학교 이름이 붙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분도 나름 억울하실 것 같았지만 오래 대화를 나눌 여유는 없었다. 내 앞에는 학생들의 표정을 풀어줄 과제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통닭값을 지급한 후 빨리 하교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통닭 몇 조각을 들고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살짝 표정이 풀린 학생들의 얼굴을 곁눈으로 확인하며 조용히 먹을 수 있게 교무실로 돌아왔다.


5시간 산행만을 생각했었다. 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데리고 안전하게 다녀올 궁리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 산행 후 통닭이 학생들에게 이렇게까지 의미가 있는지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교실에서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무음의 의미는 매우 달랐다.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30분간 소리 없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욕으로 교사들은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다. 20분 뒤 학생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싱글거리는 얼굴로 빈 통을 정리하기 위해 교무실로 들어왔다. 맛있었냐는 내 질문에 제시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과의 통닭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작년 통합사회 시간에 배달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그 배달원에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힘없이 돌아서던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매장과 이야기는 잘 됐는지, 시간을 낭비해서 놓친 배달 건수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는지 걱정이 됐다. 학생들은 피곤하지만 통닭 맛있게 먹고 돌아갔고 교사들도 무사히 현장체험학습을 마쳤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했다. 매장 주인도 손해 본 건 없으니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여유 없는 상황에서 상처를 받는 건 결국 가장 약한 자가 아닐까. 그분의 말투는 투박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예상보다 늦긴 했지만 그래도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드렸으면 좋았을 걸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정말 그 말이 딱이다. 배운 만큼만 세상이 보인다. 여러모로 좀 더 배워야겠다.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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