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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는 에스테틱?

by 마나

며칠 가렵고 말 줄 알았다. 그래서 약간 붉고 가려운 끼가 있는 목을 가뿐하게 무시했다. 알레르기도 무시하면 기분이 상하는 가보다. 한 달이 넘어가자 슬금슬금 존재를 더 드러내더니 이내 폭발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왼쪽 목이 붉은 스카프를 두른 듯 붉은색을 띠며 부어 있었다. 잠결에 목이 불편해 몇 번 손을 댄 듯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신이 들수록 가려움증이 몰려왔다. 온 신경이 목 쪽으로 쏠렸지만 더는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새벽부터 도를 닦았다. 불타오르는 목과 정반대 온도의 목탁 소리는 내 염장을 지르기도 하고 붙잡고 있기에 든든하기도 했다. 뜻도 모르는 염불을 중얼거리며 목으로 가려는 손에게 검색을 해서 집 근처 피부과를 찾을 임무를 주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는 기쁜 소식과 모든 병원은 9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는 슬픈 소식이 동시에 들렸다. 새벽 6시였던 그때 나는 가려움을 참는 것만큼이나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열심히 도를 닦아야 했다.


두 시간이 넘어갈 때쯤 손이 거의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목에 손을 안 대는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손을 댈 수 있는 방법으로 씻기를 선택했다. 찬물이 목에 닿자마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편안함이 몰려왔다. 어제 학교에서 산행을 하며 몸에 열과 땀이 났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바람 따라 내 얼굴에 붙던 꽃가루가 덤으로 생각났다. 알레르기가 오늘을 D-day로 잡고 폭발을 한 원인을 알 것 같았다. 목을 한 번 만진 손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지는 게 아니라 씻는 거라고 되뇌며 시간을 끌었다. 더는 목이 못 견딜 때까지 손의 거짓말은 계속되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 목은 한기 탓인지 더 붉고 더 두꺼운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9시가 다 되어 집을 나섰다. 집과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들어가려는데 병원 간판에 '피부과'보다 '에스테틱'이란 단어가 더 크게 적혀 있었다. 지금 내가 가야 할 곳이 맞는지 의심이 됐다. 염불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그곳 온도가 지금 나와 달라 보였다. 그래도 분명 '피부과'라고 적혀 있었다. 미심쩍었지만 빨리 목도리를 벗고 싶은 욕심을 앞세워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은 핑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내 목도 핑크니 비슷하게 생각하자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독였다. 무슨 일로 왔냐는 물음에 나는 목을 보여주며 진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앉아 계시던 분이 난처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원장님이 12시가 다 되어야 오셔서 진료는 그때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핑크 병원이 마음에 안 들었던 나는 진료를 지금 받을 수 없다는 말에 갑자기 안심이 됐다. 그리고 나를 붙잡을세라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지금 내 목과 적합한 온도를 가지고 있는 병원은 없을까. 주변에 병원은 많은데 다들 너무 세련되고 화려해서 나의 아픔을 공유할 곳은 없는 듯 보였다. 도심을 벗어난 곳으로 좀 더 걸어가 보았다. 건물 전체가 병원으로 되어 있었는데 병원 간판에 '피부과'와 '에스테틱'의 크기가 같은 곳이 있었다. 내가 간판에 있는 글자 크기에 이렇게 신경을 쓸 줄은 몰랐다. 적어도 미용과 진료를 5대 5로 생각하는 곳일 거라 믿으며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병원은 분홍색이 아니라 회색이었다.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들의 표정도 나와 비슷했다. 제대로 된 장소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드니 그제야 아침부터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됐다. 접수를 하고 그대로 앉았다. 병원 찾으려 돌아다니는 사이 몸에 열기가 올라 목이 더 화끈거리는 듯했다. 약하게 흘러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찬물처럼 반가웠다.


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힐끔 보시더니 바로 목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으셨다. 아픔을 알아봐 주는 말 한마디에 오전 내내 서러웠던 마음이 스르륵 풀렸다. 아프면 애가 된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싶었다. 나는 웃으며 여태 있었던 내 목의 증상을 말씀드렸다. 일찍 오지 않아서 알레르기가 심해진 상태니 먹을 약, 바를 약, 주사를 다 맞아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병원에 더 올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를 물으셨다. 지난 한 달간 은근히 나를 괴롭혔던 가려움증으로부터 해방될 수만 있다면 시간이 없더라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다시 오겠다는 답을 드렸다. 주사 효과는 맞자마자 나타나는 건지 약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가려움이 한층 덜했다.


오늘은 여름과 같은 봄이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깨끗이 씻고 받아온 연고를 발랐다. 목은 여전히 성이 난 채로 붉은 목도리를 매고 있었지만 가렵지 않아 살 것 같았다. 평화롭다는 건 불편함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 편안해 보이는 내 손을 보며 목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를 대해주셨던 의사 선생님을 다시 생각해 봤다. 내가 봐도 살짝 징그러워 보이는 환부를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에게 여러 가지 방법을 말씀해 주시는 여유가 인상적이었다. 그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피부 질환보다 미용을 더 중요시하는 피부과가 많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는 환자의 다급함을 알아주는 병원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환자는 아픔만으로도 충분히 서럽기 때문이다.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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