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찬 선비의 혁신역량
박정희가 현대 한국의 가치 설계자라면 가치 설계의 실천가는 기업가들이다.
현재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창립자 이병철의 회사 창립 이념은 인재제일과 사업보국이었다. 그가 당시 사업을 시작하며 모토로 삼은 것이 사업을 하여 '나라를 돕는 것'이었다. 그의 철학에 '의'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사업을 시작하면서 돈만 벌면 되지, 굳이 나서서 나라를 도울 필요가 없다.
이병철의 '사업보국'이야 말로 철기 문화가 가장 먼저 꽃핀 가야의 선진문명으로서 국제해상무역루트를 일군 역사적 전통을 현대화한 것이고, 가깝게는 의병장 곽재우와 남명 조식을 잇는 의의 철학의 본보기이다. 그는 한국 자본주의 태동기의 혁신가이자 칼을 든 선비였다.
그리고 삼성은 성과 경의 철학, 꼼꼼하고 치밀하며 정성을 다할 뿐인 퇴계의 실천 철학을 기업 경영으로 가장 잘 현신한 한국 기업이기도 하다. 그 성과 경이 이병철 회장이 가진 사회문화적 출신 배경- 의령 지방의 인문적 학문적 전통-으로 체질적, 본질적으로 녹아있어서 당연시되어 콕 찦어 강조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그 발자취를 더듬어 삼성의 기업 철학을 규명해 내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그의 사후 후대에 반드시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었다.
이병철과 쌍벽을 이루는 현대 정주영 회장은 또다른 방식의 혁신가였다. 울산 앞바다 텅빈 백사장 해안선 사진 한장과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한장 들고 영국 은행을 찾아 현대 울산 조선소 사업 차관을 얻어온 일화 등 입이 떡 벌어지는 수많은 일화에서 나타나듯 정주영의 실천력, 행동주의, 퀀텀점프 전략, 난관을 돌파해나가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분명 배움과는 또다른 차원의 천재적 실천 지능인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치밀하고 조심스러운 이병철 회장과는 다른 본능적인 기업가이다. 그러므로 그의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은 한국인의 깊은 심성에 녹아있는 불가사의한 기질- 기민한 상황판단력, 놀라운 적응력, 끝을 모를 사고의 유연성과 창조성이 최대치로 집약되어 나타난 현대 한국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인간 현신으로 볼수 있다. 정 회장은 사업보국이라는 기치를 내걸지는 않았지만, 그가 주로 한 사업이 나라의 근간을 형성하는 인프라 사업- 건설, 조선,자동차등-임을 미루어볼 때 당연히 의롭게 칼을 들고 나선 큰 선비라고 보아 마땅하다.
삼성, 현대, LG 가치의 뿌리
필부의 작은 부조차도 옳은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 나라를 좌지우지할만큼의 큰 부는 반드시 올바른 가치, 올바른 철학에서 나온다. 이는 막스 베버가 기독교 정신 즉 칼빈주의로 자본주의의 성공을 설명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베버는 칼빈주의의 내용- 현실적인 풍요와 부 근면이 어떻게 종교와 연결되는지 천착해서 미국, 네델란드, 북유럽 신교도 국가들이 왜 자본주의에 성공했는지를 설명했다. 여기서 신교도국가가 아닌 영국의 경우가 발생해서 '영국 역설'이라는 말이 등장했는데, 데, 종교의 내용이 아니라 종교 혁신이라는 행위의 근본 가치에 더 주목한다면, 기존의 카톨릭을 죽이고 혁신한 점에서 보면 영국도 헨리8세의 개인적인 이혼 문제 때문이기는 하지만, 가톨릭에서 영국성공회로 나름의 종교개혁이라는 혁신을 했기 때문에 베버의 설명에 부합한다고 보여진다.
영국이 신사도를 확립했듯, 일본이 무사도를 확립했듯, 미국이 서부개척시대에서 프론티어 정신을 확립했듯 대한민국도 전통 정신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현대사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혁신을 이루어낸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대로 철학적, 가치적으로 정립해낼 의무가 있다.
필자는 선비정신의 혁신적인 면모를 부각한 현대화가 필요하고, 부의 뿌리와 부를 쌓는 근원사상을 퇴계의 유교사상, 성과 경, 의의 혁신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문무겸비의 선비정신을 계승한 것은 성과 경 퇴계의 정신을 이은 삼성, 의룰 중시하는 남명의 유교철학을 이은 LG를 비롯한 의령 진주 인근의 기업가들, 불세출의 모함가적 기업가정신, 창조적 돌파의 한국인의 아이콘 정주영의 현대 등 기업가들의 철학과 전통철학의 혁신성을 잘 규명하고 세련되게 포장해서 국내외에 커뮤니케이션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한 거인들에게 감사하면서 그들의 경영철학을 사상적으로 정리하고 의미부여해주는 것이 후학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