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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Oct 20. 2023

의로운 선비들의 등장

2022년 여름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그린 영화'한산-용의 출현'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 중반, 항왜(조선에 감화, 투항한 왜군) 가 되는 이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인 왜군 병사(이정신 분)가 포로로 잡혀 심문당하던 중에 이순신 장군(박해일 분)에게 묻는다. 도대체 이 싸움은 무엇이냐고, 무엇을 위한 싸움이냐고. 그러자 장군이 짤막하게 답한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감독이 남명의 의 철학에 대해 조사하고 공감하여 만들어 넣은 대사인 것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의와 불의의 싸움'이란 이 대사는 영화 말미, 학익진 대열이 짜여가는 클라이막스에서 터진 박해일 배우의 '발포하라'라는 대사와 더불어 명쾌, 통쾌하면서도 곱씹어 생각하도록 만드는 대사였다.  

이 영화는 전작 '명량'에서보다 일본 진영의 상황을 비중있게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일본 장수와의 전략 대결을 본격적으로 그리며 일본 장수 또한 나름의 지략과 전략이 있는 장수로 그린다는 점에서 전작과 차별점을 갖는다. 

또 항왜 병사와 이순신 장군과의 대화에서 볼수있듯, 전쟁이 단지 무기만을 든 싸움이 아니라, 조선과 왜의 정신 문화의 대결이라는 차원으로까지 전쟁을 의미를 철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전쟁도 폭력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두 문화간의 소통과 충돌이기도 하다. 진정한 오리지널리티는 고립이 아니라 교류와 주고받는 영향 속에서 생겨난다. 이황의 성과 경 철학이 조선 지식인의 몰락 이후 조선에서는 자취를 잃어가고, 오히려 일본에서 일본 특유의 생활 철학으로 꽃피웠음을 책의 도입부에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남명의 의 철학은 조정의 정치적 세력 싸움에서는 패하고 사라졌을 지언정, 기층민의 심성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이후 이어진 임진왜란 떄의 의병, 일제강점기의 의병과 독립 활동- 끊이지 않았던 의사와 의인들의 의거 -등의 형태로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현대에 들어 한국을 연구하는 미국 아이비대학의 교수들 중에서도 한국인의 의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런 의 철학은 현대에 들어 한국인이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해내는 데에도 발휘된다. 의 철학의 현신은 1997년 아시안 외환위기 (IMF외환위기) 당시 전국민적 금모으기 운동,  2000년대 중반 태안 앞바다 유조선 침몰 후 보여주었던 국민적 자원봉사 열기 등 큰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매일 일어나는 사건사고들 중에도 나타나는 의인들의 출현으로도 자주 보인다. 일본 신오쿠보 역에서 일본 취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철로로 뛰어든 이수현 씨를 비롯, 이름을 밝히기를 쑥쓰러워하는 숨은 의인들은 사회를 훈훈히 밝힌다. 칼든 은행 강도도 무서워하지 않고, 경찰이 오기도 전에 발차기를 날리는 용감한 은행 여직원도 있었고, 밤길에 지나가던 택배기사가 뺑소니를 잡고, 혹은 불을 끄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의로운 일에 앞장서는 한국인의 기층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그 본질적인 가치관 덕분이다.

이처럼 선비정신은 현대 한국인에게 첫째는 학문 숭상, 넘치는 교육열, 스승과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예 등의 형태로도 나타나고, 둘째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는 순정과 지고지순, 지조로, 셋째, 국가 발전에 있어서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내 한몸 바치는 수많은 직업인들의 헌신과 희생의 형태로 나타나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가 '큰 가족 (대가족이라는 의미와 조금 다름, 가족적인 국가공동체)'를 이루는 공동체 정신으로도 나타난다.  

어디 의령 뿐이랴, 전국에서 쉼없이 배출된 칼든 선비들의 전통은 후손들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이것을 '우리가 그 동안 쉬지 않고 빨리빨리 달려만 오느라 조금 바빠서' 우리의 지난 성취와 자취를 돌아보고 우리만의 철학으로, 가치관으로 확립하여 우리 스스로 또는 전세계적으로 적극 소통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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