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오돌토돌한 무언가가 느껴지면 잡아 뜯으려고 애쓴다. 뜯어내기 힘든 몸의 점까지도 걸리적거린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면 생채기를 내서라도 뜯어내려 애쓰는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내 몸에는 곳곳에 그로 인한 상처와 흔적들이 가득하다. 작은 통증과 흉터밖에 얻는 게 없는 이 행동을 왜 멈추지 못하고 반복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거슬리는 그것을 당장 뜯어내버리고 싶을 뿐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안절부절못하겠는 기분. 나는 늘상 참기 힘든, 종종 모든 것을 졸속으로라도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때로는 이런 마음이 커져서 일상과 나를 온전히 잠식할까봐 불안하다.
어린 시절에는 얌전하고 참을성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엉덩이 무겁게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서 하기 싫은 숙제와 공부의 더미들에 파묻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무언가를 집중하고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힘들다. 모호한 결과와 미래를 견디며 지속하는 힘이 내 안에서 다 증발해 버린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가문 땅처럼 쩍쩍 갈라지고 더 이상 샘솟을 것이 없는 듯 메말라버린 마음. 단지 디지털에 중독되었거나 나이가 들어 집중력이 약해졌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자꾸만 초조한 이 마음은 어디서 자꾸 새어나오는가. 나는 그렇게 긴 시간을 때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면서, 참기 힘든 마음에 종이를 구기고 찢고 못난 나를 매질하며.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고, 그렇게 직장에 입사하고 그다음에는 정말 남들이 말하던 평안한 일상과 미래를 얻었던가? 나는 계속해서 불안했고 업무를 잘못 처리할까봐 초조했고 내 판단이 틀릴까봐, 아니 나는 이미 예전부터 틀려먹게 살아온 것 아닐까 하는 기분에 사로잡혀야 했다. 내 불안은 왜 아무리 노력해도 잠재워지지 않고 이렇게 꾸준히 깊이 뿌리 뻗어가는 것일까 한탄한다. 이제 끝인가, 이제 좀 괜찮아진 걸까? 안심해도 되는 걸까. 그러면 저 마음 깊은 샘에서 다시 그것은 속삭인다. 너는 나를 평생 벗어날 수 없을걸.
그런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은 다양한 형태로 나를 찾아온다. 속에서 들들 끓어올라오는 분노감, 무언가 해야 하고 빨리 해내야 할 것 같다는 초조함, 몸에 가득 달라붙어 짓누르는 무기력감. 그럴 때 나는 섣부르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섣부르게 실망하고 끝을 낸다. 나의 시작은 언제나 목적이 앞선다. 난 이 지긋지긋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 뭔가 나도 모르는 나의 능력이 발현되지 않을까.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능력, 그게 내 안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혹여라도 조금이라도 달리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일말의 씨앗이 내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계속 붙들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내 마음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금세 가라앉는다.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지금의 삶을 벗어나 새롭게 살고 싶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무엇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른다.
내 효용성을 찾고 입증하려고 애쓰며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쓸모 있는 나를 원했다. 무언가 다른 삶, 구질구질하지 않고 누군가와 씨름하지 않을 수 있는 조용히 나의 몫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우아한 삶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 현실에서 나를 건져내기 위한 출중한 능력이 필요했다. 아쉽게도 나는 천부적인 뛰어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애써 인내하고 가꾸며 돌보며 다독여주며, 그렇게 엉덩이 무겁게 버티고 버텨야 하는 것이 내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지름길을 찾아 헤매왔지만 어디로 가기 위한 지름길인지조차 몰랐다.
다시금 길을 잃었지만 이제는 급히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는 조바심을 억누르고 머무르는 연습을 시작한다. 불편하고 초조한 마음으로도 하루를 버틸 수 있고 그렇게 버텨온 내가 미련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았다고 속삭인다. 앞으로 내딛는 한 발 한 발을 좀 더 신중히, 충분히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뻗고 싶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살펴보고 싶다. 힘들다면 다시 철퍼덕 앉아 쉬어도 되니까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이 원하는 삶의 모양새인지 생각하며. 나는 언제나 실패했다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온전히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단 한걸음이라도 나는 더디게 돌아 돌아 삶의 반경을 확장한다. 조금씩 나만의 지도를 그려갈 것이다. 어떤 모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지도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