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는 물어뜯는 본능이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조류라면 나뭇가지를 뜯으며 나무를 맛보겠지만 인간과 함께 사는 앵무새는 물건을 뜯으면서 대리만족한다. 새 부리도 계속 자라기 때문에 물어뜯는 행동은 인간들이 손톱 깎듯이 부리를 다듬는 효과도 있다.
뜯기 쉽고 어디서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뜯기 재료는 책이다. 아끼는 책을 뜯어놨을 때는 마음이 아팠지만, 글자가 훼손되는 상태까지 깊이 뜯지는 못하는 듯하여 마음을 비웠다. 책은 글자만 읽을 수 있으면 된다는 수준까지 해탈했다.
문제는 책을 뜯고 나면 종이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창문을 열어놔 바람이라도 불면 방바닥은 그야먈로 난장판이 된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무선청소기는 필수다.
씹는 맛이 일품인 종이대신 부드럽게 뜯을 수 있는 재료는 휴지다.
책이 바게트 빵이라면 종이는 치즈케이크처럼 부드러운 식감일 것이다. 야무지고 빠르게 뜯는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휴지를 뜯는 건가 싶다.
앵순이는 게임 좋아하는 아빠를 닮아서 마우스도 사랑한다.
특히 마우스의 여러 부위 중 가장 맛이 좋은(?) 스크롤 버튼의 고무를 맛나게 뜯는다. 먹지도 않으면서 뜯는 걸로 보아 뜯는 재미가 좋은가 보다.
처음에는 앵순이를 혼도 내보고 못 뜯게 말렸지만 새 고집은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집에 있는 마우스를 모두 내어주었다. 이왕 뜯는 거 편하게 뜯으라고 말리지 않았더니 깔끔하게 뜯어 반들반들하게 만들어 놓았다. 마우스 정도는 앵무새에게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녀야 앵집사 자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 수 없는 전자기기가 있다. 바로 조이스틱이다. 마우스보다 더 화려하고 예쁜 색감을 지닌 조이스틱은 꺼내 놓자마자 앵순이의 목표타깃이 된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몇 번 뜯어서 좌우 방향키는 너덜너덜해지고 있다.
앵순이에게 더 이상 뜯기지 않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울 때는 이렇게 조이스틱을 엎어놓고 간다. 서로 적응해 살기 위해 인간도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 중이다.
동물을 식구로 받아들이면 행복한 점도 많지만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특히 전자제품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스트레스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앵무새의 뜯기 능력은 본능이다. 앵순이는 물건을 뜯고 그런 앵순이를 쫓아다니며 뜯어말리는 것은 앵집사의 역할이다. 그러고 보면 앵순이를 뜯어말리는 행동도 앵순이를 뜯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