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순이의 취미는 뜯기지만, 특기는 뽑기다.가장 잘 뽑는 건 자판이다. 자판이 뽑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앵순이 덕분에 알았다. 자음과 모음 버튼 하나하나가 독립된 존재였음을 알게 해 주었지만, 처음 내동댕이쳐진 자판 조각들을 보았을 때는 놀람과 충격 그 자체였다. 다시 자판 위치에 맞게 꽂아주면 원상 복귀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이제는 앵집사로서 여유도 생겨 이왕 자판 조각이 뽑힌 김에 자판 틈 사이사이를 청소하는 스킬을 발휘하고 있다. 자판 사이에 생각보다 먼지가 많다.
태블릿 펜, 그림 그리기 펜의 촉도 야무지게 뽑아낸다. 탭에서 펜을 꺼냈는데 터치가 안 되는 것이었다. 터치하는 느낌도 이상하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 펜을 자세히 보니 펜촉이 사라졌다. 펜 끝에 연필심처럼 생긴 부분이 뽑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런 사고를 칠 녀석은 단연 앵순이 뿐이다. 펜이 있었던 근처 방바닥을 샅샅이 살펴보니 펜촉이 있었다. 천만다행이다. 이 사건 이후로 태블릿 펜을 앵순이가 볼 수 없게 한다.
와콤 신티크라는 그림 그릴 수 있는 액정 태블릿도 터치펜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오빠가 시험 기간이 끝나고 그림 그리기를 해보려고 펜을 들었는데 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앵순이의 짓임을 가족 모두 안다. 다행히 책상 모서리에 펜 심이 있었다.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앵순이의 공격을 받게 된다. 옛날에는 물건 망가지는 게 아까웠지만 이제는 앵순이가 혹 씹어 삼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서 뽑히는 촉을 가진 물건은 서랍에 잘 숨겨 두기로 했다. 그러나 오빠가 그림 그리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오늘은 펜촉 뽑는 장면이 딱 걸렸다.
힘들게 뽑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발을 쓰지도 않고 부리로만 심을 가볍게 뽑는다. 뽑기 장인이 되어간다.
자판과 펜촉 말고 또 잘 뽑는 물건이 있다. 바로 핸드폰 볼륨 버튼이다. 처음 핸드폰 볼륨 버튼이 사라졌을 때 어이가 없었다. 뽑다 뽑다 이제는 버튼도 뽑는 건가 싶어서다. 지금 찾지 못하면 귀찮게 A/S 센터에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므로 청소하기 전에 무조건 찾아야 했다. 다행히 아들이 찾아 주었고 못 찾았으면 울뻔했다.
핸드폰은 케이스가 지갑형이지만 버튼은 외부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방심하면 쉽게 버튼을 약탈당한다. 한 날은 보는 앞에서 대놓고 버튼을 뽑길래 자세히 관찰해 보니 병따개로 병뚜껑 따듯이 지렛대의 원리를 부리 두 개로 구현하며 1초도 안 되어 뽑아 버린다.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바로 걸렸다.
볼륨 버튼을 바로 뺏어서 제자리에 넣으니 고장 없이 작동이 잘 된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앵순이는 털도 잘 뽑는다. 엄마는 눈썹을 뽑아주고 아빠는 털을 뽑아준다. 엄마 눈썹은 길어서 그런지 털을 부리로 다듬어 준다는 느낌이었는데, 아빠 수염은 짧아서 그런지 확 잡아당겨 뽑을 때가 있다. 거실에서 갑자기 괴성이 크게 들리면 앵순이가 아빠 수염을 뽑아버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앵순이에게 수염 뽑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면도를 잘하고 깔끔하게 있어야 한다.
한 번씩 앵순이가 머리 뒷부분을 아빠 수염에 비비고 있다. 설마 간지러운 부분을 아빠 수염으로 긁는 것인가 싶다. 아빠의 수염을빗으로도 사용할 줄 아는 앵무새다. 설마 같은 종족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