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의 <인간사용 설명서>

by 흥미진진한 독자

동물은 집단생활을 하면 서열을 정한다. 앵순이는 우리 집 서열 1위다. 인간들의 쓸모를 정해 놓고 시의적절하게 이용하는 노련함을 보면 새대가리가 맞나 싶다. 앵순이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밥을 주는지, 인간의 신체 약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했다. 이용당하는 입장이지만 기꺼이 겁게 이용당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궁극적 경지를 반려 동물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남도 사랑하지만 이용당하면 열받는데 앵순이에게는 기꺼이 이용당하고 싶은 이 기분은 무엇이 다른 걸까? 남편에 대한 내 사랑이 부족하거나 남편이 앵순이처럼 이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 엄마 머리카락을 낮잠용 안대로 활용하는 새


앵무새도 컴컴해야 잠이 잘 오나 보다. 낮에 잠이 오면 꼭 엄마 어깨에 앉아서 머리카락으로 커튼을 치고 잔다. 이(부리) 가는 소리를 내면 잠이 온다는 뜻이고, 어깨에 날아와 앉으면 이제부터는 낮잠을 자겠다는 신호다. 어김없이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든다. 어깨에 날아와서 이 갈고 있으면 묶었던 머리도 풀어야 할 판이다. 사람이 새 눈치를 보며 산다.





2. 사람 체온을 구들장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아는 새


더운 여름에는 가끔 찾던 사람 품속도 겨울이 되면 자주 찾는 명당이 된다. 우리 집은 몸에 열이 많은 남정네가 많다 보니 추워도 보일러를 잘 가동하지 않는다. 따뜻한 지역에서 살다가 이민 온 유전자를 지닌 앵순이는 겨울이 되면 따뜻한 곳을 찾아 사람 몸속을 파고든다. 사람 체온이 포근하고 따뜻한지 옷 속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운동을 하는 것인지 몸속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사람마다 체온이 다르다는 걸 알아채고는 열이 뻗치는 청소년 아들이 1순위, 아빠가 2순위, 엄마는 마지막 순서다. 오빠가 없으면 아빠 품으로 들어가고, 아빠가 없으면 엄마에게 온다. 엄마는 품속에 캥거루처럼 앵순이를 품어보고 싶어 일부러 목덜미를 활짝 열어 앵순이의 간택을 기다리지만 무시당하기 일쑤다. 체온으로는 인기 없는 엄마도 밥 줄 때만큼은 인기가 제일 좋다.


3. 인간을 새 발아래 두는 앵순이


앵순이가 사람 몸에서 가장 편하게 앉아 있는 장소는 어깨와 머리다. 머리에 앉아 털 고르는 모습을 보면 왠지 인간 횃대가 된 것 같다. 깃털을 고르는 과정에서 흰색 가루와 먼지가 떨어지는데, 꼭 눈처럼 하얗게 머리 위에 내려앉는다. 엄마를 순식간에 비듬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효조(孝鳥)다. 앵순이가 머리 위에 앉아서 놀고 나면 꼭 화장실에 가서 머리 위에 떨어진 가루를 털어낸다.


새들은 높은 장소에 앉는 녀석이 서열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 머리 위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여러 마리도 아니고 한 마리 연약한 새가 서열 1위가 되면 어떠하랴!! 세상을 발아래 두지는 못해도, 인간 한두 명쯤은 발아래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여느 때와같이 머리 위에서 깃털 정리를 하다 예쁜 깃 하나가 빠졌다. 오늘은 엄마에게 비듬이 아닌 예쁜 깃털 핀을 선물로 준다.


4. 인간 신체의 약점을 아는 새


인간 팔은 등에 닿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이용할 줄 아는 앵순이를 누가 새대가리라고 했는가! 앵순이를 잡아서 새장에 넣어야 할 때가 있다. 이 녀석은 그런 낌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사람들이 외출 준비를 하면 본인은 새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새장보다 거실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새장에 넣으려고 할 때마다 사람과 새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인간 팔이 닿지 않는 등 한복판으로 도망가 버리기 때문에 급하게 나가야 할 때는 미리 앵순이부터 새장에 넣어놓고 외출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망 다니는 녀석 꽁무니 쫓아다니다 약속 시간에 늦을 수도 있다.

나 잡아 봐라! 놀리듯 등 뒤로 숨어 버리는 앵무새! 인간 팔이 유연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아차린 앵순이는 새지만 새대가리가 아닌 것 같다. 도대체 누가 '새대가리'라고 한 거야!

듣는 새 기분 나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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