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인터넷이나 그림책을 뒤적이다가 통통한 입과 부푼 두 볼이 풍선처럼 터질 듯이 뚱뚱한 얼굴을 가진 모나리자를 본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아래 그림을 보세요. 보시자마자 옆 사람 눈치도 안 보고 크게 소리 내어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을 잘 살펴보세요. 혹 도서관에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주의해 주세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신비한 미소를 지닌 모나리자를 떠올리다가, 정말로 말도 안 되게 못생긴 모나리자를 보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경악과 분노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12세의 모나리자>
우리 아파트와 이웃한 아파트 단지에 70대 정정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1층에 사시는데, 집 앞뒤로 작은 화단이 제공되어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키우십니다. 저는 산책을 하면서 할아버지와 안면을 트고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어 그 집 화단을 제집인 양 자주 들락날락합니다. 목적은 꽃 사진을 찍기 위해서입니다. 꽃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라서 제가 맘대로 들락날락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인사를 하면 반갑게 받아주시기도 하시고 꽃 이름을 알려드리거나 꽃에 관한 이야기를 제가 들려드리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꽃을 사랑합니다. 저는 그분의 영혼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은 꽃을 사랑합니다. 꽃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 더 잘 보이는 법입니다.
위에 있는 꽃 사진은 그 할아버지네 작은 정원의 나무를 타고 올라간 풍선덩굴이란 풀꽃입니다. 꽃은 작고 앙증맞게 귀엽습니다. 마치 작은 흰나비 두 마리가 얼굴을 맞대고 키스를 하는 모양입니다. 풍선덩굴이란 이름은 이 풀꽃을 보기만 해도 고개를 끄덕끄덕하실 것입니다. 어릴 적 껌조차도 귀했던 시절 껌을 대신해 주었던 꽈리처럼 생긴 열매를 맺는데, 꽈리보다는 크기가 더 커 마치 조그마한 풍선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듯이 보입니다. 꽃말을 ‘어린 시절의 추억’, 혹은 ‘당신과 날아가고파’라는 의미를 사람들이 주었습니다. 둘 다 그럴듯한 꽃말입니다. 어릴 적 꽈리를 불던 추억을 떠올리고, 풍선을 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의 나라로 날아가고 싶은 열망을 담은 것이겠습니다.
앞에 있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한 사람은 1932년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보테로라는 화가이자 조각가입니다. 그는 잔뜩 부풀려진 인물과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 등을 통해 특유의 유머 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2세의 모나리자>가 바로 그의 대표적인 그림입니다.
그의 조각품이나 그림들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인물들은 한결같이 뚱뚱한 모습입니다. 새 조각도 터질 듯이 뚱뚱합니다. 인물 조각도 인체 비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림도 그렇습니다.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골목길에 가득 찰 정도로 뚱뚱하고, 단체로 표정 없이 춤을 추는 사람들도 모두 뚱뚱하게 그렸습니다.
발레리나
그가 2001년에 그린 <발레리나>라는 작품 속에는 뚱뚱한 발레리나가 등장합니다. 어마하게 뚱뚱한 발레리나가 나비처럼 고운 발레복을 입고 다리를 올리고 춤을 추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림 속에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대 발레리노의 겁먹은 표정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으세요? 위 그림을 한 번 보십시오. 너무 웃지는 마십시오. 보테로는 뚱뚱한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양감과 색채'이며 풍부한 양감 표현을 위해 볼륨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색채를 풍부히 사용하려면 그만큼 넉넉한 지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색을 적게 보여줄수록 작품이 더 다채로워진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한 작품에 적은 수의 색으로 그것들을 혼합하여 표현합니다. 그에게 있어 볼륨은 행복의 상징이며, 건강과 긍정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낙천적인 남미의 특성, 즉 풍만함은 건강, 부유, 즐거움이라는 의미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화사한 색채 뒤에 소박한 유머가 숨어 있습니다. 보테로의 그림은 눈으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그린 것도 아닙니다. 손으로 그린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그가 가슴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한 동물이나 인물은 모두 현실보다 더욱 살진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의 인물들은 작고 통통한 입과 옆으로 퍼진 눈, 오동통한 두 볼로 뚱뚱함이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눈에는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뚱뚱한 인물들은 결코 무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바람을 가득 불어넣어 여행 준비를 마친 애드벌룬처럼 금방이라도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라 행복의 나라로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그는 또 다빈치와 같은 옛 거장들의 걸작에서 소재와 방법을 차용(借用)하여 패러디한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고대의 신화를 이용하여 정치적 권위주의를 예리하게 고발하고 현대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도 있습니다.
1997년에 그린 <과부(The Widow)>도 그의 화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보테로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과부가 되었고, 세 자녀를 궁핍한 살림에 어렵게 키웠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 어머니의 표정은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아이 사이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과부의 모습에서는 숙연한 연민의 정이 피어오릅니다. 아마도 화가 자신의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을 그린 것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등장하는 어머니나 아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뚱뚱하기만 합니다.
이중섭, <물고기와 아이들>
이 그림에서 느닷없이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들> 그림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그림 그릴 종이조차도 없어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입니다. 궁핍했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아이들에게 물고기로 배고픔을 달래주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 그림으로 표출된 것과 너무나 유사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이 너무 빗나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테로의 그림에서 다른 한 가지의 중심 소재는 서커스입니다. 서커스를 하는 인물들 역시 뚱뚱하고 화려한 색채와 조명을 받고 있지만 그림의 배경에는 고요함과 고독감이 감춰져 있습니다. 삶의 고단함과 피로함을 대체해줄 수 있는 웃음과 기예를 그려낸 것이 서커스 연작입니다.
보테로에 대하여 나는 두 가지의 측면에서 바라봅니다. 하나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 속 인물들이 뚱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비례의 파괴에서 오는 신비로움과 볼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비록 뚱뚱하지만, 그가 패러디한 사람들조차 모두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그의 그림을 통하여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날렵하고 예쁜 인물들만 그려야 성공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성공이라고 매진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 체면과 욕구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장된 인체 비례와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된 인물 그림으로 유명하며 현대의 '소박파'라고 말할 화풍으로 경묘(境妙)한 유머가 느껴진다."
보테로에 대한 한 전문가의 재미있는 평가입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현대의 '소박파'라는 새로운 미술 유파를 만들어낸 그 평론가의 식견에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