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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Oct 05. 2022

튤립

인간의 부와 신분 상승의 욕구

우리는 꽃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고자 합니다. 평화와 위안을 주는 꽃 가운데 손꼽을 만한 것으로 단연코 ‘튤립’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튤립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꽃입니다.  

    

버어지아 울프


모더니즘 계열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으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이렇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튤립꽃이 등장합니다. 하원 국회의원의 아내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매일매일을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느 날 인도에서의 옛 구혼자였던 피터가 파티에 참석합니다. 피터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낭만적이며 다른 사람의 삶을 공유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은 모험심 강한 청년입니다. 그는 영국 귀족사회의 속물적인 파티를 즐기는 것에 대하여 비난하고 혼잣말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인생이란, 감옥의 벽을 긁는 것과 같다. 인간관계에서 실망하면, 나는 가끔 정원으로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얻지 못하는 마음의 평화를, 꽃에서 얻곤 한다.”    

 

영화로 만들어진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의 자화상이라고 하고 있다.

50대의 고관 부인으로 아름다움과 다양한 재능을 겸비하고 겉으로는 화려한 생활 속에서 고민도 없이 살아가는 댈러웨이 부인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일에 몰두할 때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곤 합니다. 그러나 한가로움 속 책장을 덮고 나면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슬픔이 잡힙니다. 생활이 너무 단조로워 튤립밭에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려는 그녀였습니다. 너무 고독했기에 그녀의 생을 버티는 힘은 오직 기억과 과거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튤립은 과거의 기억이자 그리움의 시간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튤립에서 웃음과 기쁨을 얻고, 눈물과 슬픔을 심고, 지난날의 후회와 그리움을, 지금의 외로움을 투영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튤립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곤 합니다.   

            


‘튤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네덜란드일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상징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튤립의 고향은 따로 있습니다. 사실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로, 터키의 국화입니다. 본래 터키에서 랄레(lale)라고 불리던 튤립은 마치 이슬람교도들이 머리에 두른 터번(Turban)과 비슷게 생겼다고 하여 튈벤드(Tülbend)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이 라틴어 툴리파(tulipa)를 거쳐서 영어로 튤립(Tulip)이 되었다고 합니다. 터키인의 튤립 사랑은 남다를 정도여서 많은 원예종을 만들어내고 도자기와 같은 그릇에 튤립의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터키에서 출발한 튤립이 16세기 후반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됩니다. 꽃 모양이 이색적으로 생겨 특히 귀족이나 대상인에게서 크게 유행하게 됐습니다. 별안간에 유럽에서 귀족의 상징으로 격상된 튤립은 특히 신분 상승의 욕구를 가진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공급은 적은데 유행이 점점 고조에 다다르자 그에 따라 튤립의 가격도 점점 치솟아 올라 튤립 뿌리 하나에 황소 25마리를 줘야 살 수 있었고 희귀종은 당시 대저택 한 채 값과 맞먹었다고 합니다. 튤립은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벼락부자를 꿈꾸는 많은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결국에는 집단적 광기로 내몰린 많은 사람이 네덜란드와 유럽을 투기의 광풍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튤립에 대한 공급이 많아지자 가격이 폭락하게 되고 심각한 경제문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태동을 알리고 예시가 된 사건이 튤립과 같은 한갓 꽃에 대한 열풍이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인간의 부와 신분 상승의 욕구는 한 송이 꽃조차도 귀한 보석보다도 더 가치 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그러한 욕망이라는 것은 꽃이 지고 나면 허망한 마음이 남는 것처럼 헛된 망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것은 현대인은 튤립이 아닌 또 다른 많은 것에 욕망을 불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훈이 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식물학자인 최문형은 역사적인 튤립 공황을 다른 관점, 즉 인간의 관점이 아닌 튤립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고 있습니다. 튤립이 나비나 벌이 아닌 인간을 중매쟁이로 하여 많은 자손을 퍼뜨리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문형의 의견대로 하면 튤립은 ‘식물병법’에 무척이나 조예가 깊은 꽃입니다.   

  

우아함의 대명사인 튤립은 막강한 매력을 지닌 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땅의 풍경이 단조로워 특이하고 화려한 꽃들을 좋아했다. 네덜란드는 땅이 부족해서 정원의 규모가 작았고, 사람들은 자기 정원을 마치 보석상자처럼 아꼈다. 특히 꽃 중에서도 튤립에 열광하였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재배되었던 꽃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유용하기도 했다. 그것들은 약재, 향수, 음식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튤립이 처음 유럽에 퍼졌을 때 사람들은 튤립이 가지고 있는 실용성 없는 아름다움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향기가 없는 이 꽃을 순결하며 절제하는 꽃으로 찬양했다. 튤립의 입장에서 보면 네덜란드 사람의 과시 취향이 자신의 자손을 퍼뜨리는데 한몫을 한 것이다. 튤립은 호모 사피엔스 중에서도 네덜란드인들을 중매쟁이로 최대한 활용한, 당당하고 우아한 꽃일 것이다.

 - 최문형, <식물처럼 살기> 중에서


진짜인지 우스갯소리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엄청난 가격까지 치솟았던 튤립에 관한 재미있는, 으스스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먼바다를 다니던 항해사가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바뀐 세상 물정 모르고 그만 다른 사람의 튤립 알뿌리를 양파로 착각하고 요리해서 먹어버렸답니다. 대저택 한 채를 요리해서 한순간에 꿀꺽 먹어버린 겁니다. 튤립 광풍을 전혀 모르고 있던 이 항해사는 평생 일해도 갚지 못할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지요. 그는 당연히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재판관은 "튤립은 튤립일 뿐이다"라며 양파 가격만 물어주고 훈방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재판의 결과로 ‘튤립은 튤립일 뿐’이라는 인식이 네덜란드로 전체로 확대되면서 튤립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실제였다면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청난 나비효과라고 해야 할까요? 역사상 튤립만큼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꽃은 없을 겁니다.

              


튤립의 엄청난 역사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설화로 옮겨가 보겠습니다. 역시 시대는 중세 유럽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너무 아름다워서 뭇 남자들이 그 여인을 보기만 해도 미모에 반해버렸다고 합니다. 많은 남자가 마음속으로 끙끙대며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용기 있는 세 명의 남자가 이 여인에게 청혼을 해왔습니다. 첫 번째 남자는 이웃 나라의 왕자였고, 두 번째 남자는 용맹한 기사, 세 번째 남자는 재산이 많은 상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세 남자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를 택할까요? 이 여인에게는 세 남자 모두 놓치기 아까웠습니다. 오랫동안 고민을 해도 답이 나오지 못해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여인의 고민은 한 달을 넘어 두 달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여인의 결정만을 기다리던 세 명의 남자는 결국 지쳐서 여인을 포기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세 명의 남자 모두 떠나버린 사실을 안 여인은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그 여인은 그 뒤로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꽃에 관한 대부분의 전설이나 설화가 그렇듯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예측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은 여인의 무덤에서 꽃 한 송이가 피게 되니 바로 튤립입니다.      


죽어서 튤립이 된 이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빠졌던 상황에 우리도 빠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여인은 왜 참으로 좋은 상황에서 행복할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을 잡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해야만 했을까요? 해답은 이 여인이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당연히 다른 것을 손에서 놓아야만 하는데 모든 것을 꼭 쥐려고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 선택해야 할 순간순간에 마주치게 됩니다.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은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놓을 줄 아는 마음이라야 이룰 수 있습니다. 비우고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얻을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잡을 것은 잡고 버릴 건 버리는 선택과 포기를 위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호활동을 하는 노년기의 오드리 헵번


튤립과 관련된 아름다운 여인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독일 점령지인 네덜란드는 연료와 식량 배급이 제한되어 기아와 아사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로마의 휴일>과 같은 영화로 유명한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환경에서 튤립 새싹과 밀가루를 섞어서 케이크와 비스킷을 만들어 연명했다고 합니다. 피난 생활 중 너무나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와 합병증에 시달렸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오드리 번과 같은 대스타도 전쟁이라는 어려운 생황에 처하자 너무나도 궁핍하고 배고파서 먹었던 것이 튤립 뿌리와 싹이었다고 합니다. 오드리 번에게 그 어려운 시절을 상징하는 꽃이 튤립이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독일 점령 기간에 살아남은 행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 생활을 마감하고 여생을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전쟁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은 그녀는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꽃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튤립꽃과 같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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